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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5. 2019

44. 카페에서의 소개팅을 지켜보며-

<카페에서의 소개팅을 지켜보며->


오늘은 무슨 음료를 마셔볼까, 메뉴판을 찬찬히 살펴본다.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최고지. 원두를 시원하게 '윙!' 갈고, 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 샷을 내린다.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물에 샷이 사르륵 내려간다. 에스프레소와 물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모습이 기분 좋다. 자자, 오늘도 애매한 씨의 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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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추'라고 들어보셨어요?"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쫑긋 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30대 초중반의 남자분이 맞은편에 앉은 여자분께 물어본다. "네? 그게 뭐예요?" 남자분은 하하 웃으면서 알려준다. "요새 SNS에 되게 핫해요. '연스러운 남을 구한다'라는 뜻이래요. 저희도 약간 그렇죠?" 테이블에서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들린다. 두 분은 독서동호회에서 처음 만났다. 어느 날 모임이 끝날 때쯤 운명처럼 거센 비바람이 쳤고, 때마침 여자는 우산이 없었다. 그렇게 남자는 자신의 집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차를 몬다. 약간의 배려의 시작이 호감으로 이어졌고,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은 그 결실의 날이었다. 독서모임 외에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첫날이었던 것이다.  


성급하게 다가가지 않게 가벼운 이야기 '자만추'로 시작한다. 다음은 두 사람의 공통주제인 '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누구누구 작가님 책은 보셨냐', '이 부분이 제일 재밌더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더라', '그런데 그 책을 읽다 보니까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개인'의 이야기로 접어든다. 대학 전공, 직장생활, 친구와의 관계, 전에 사귀던 사람, 그렇게 이야기는 더 사소하고도 깊어진다. 서로를 더 들여다볼수록, 둘의 대화 중간중간에 공백이 생긴다. 내면에 숨겨둔 '나'를 꺼내놔도 되는지 고민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정제된 내가 아닌 '나'를 드러내도 되는지 고민한다. 


그러다 그런 고민도 무색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본인도 모르는 새 '나'를 드러내고 있음을 느낀다. 자상하고 상냥했던 말에 본연의 말투가 섞인다. 누구보다 성숙해 보였던 상대방에게서 어린아이가 보인다. 누구보다 완벽해 보였던 상대방에게서 허점이 보인다. 주고받는 대화 속 그 사람의 가난함이 보인다. 주고받는 대화 속 그 사람의 궁핍이 보인다. 경제적인 가난함과 마음의 가난함, 그로 인한 궁핍이 눈에 띈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둘의 대화는 결국 멈추고 말았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요. 제가 뭐 실수한 거 있어요?" 

"아니요."


처음의 두 사람은 운명이라 믿었다. 서로의 웃음소리, 책을 고르는 취향, 심지어 날씨까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게 정말 운명이 맞는지, 정말 인연이 맞는지 '확신'이 필요했다. 마침내 비공식적인 첫 만남에서 모든 것이 판가름 났다. 전공을 묻는 척 대학을 묻고, 직장생활을 묻는 척 직장을 물어 연봉을 재보고, 인간관계를 살피며 그 사람을 들여다본다. 전에는 그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이 별 볼 일 없이 보인다. 이 사람과는 운명이 아님을, 인연이 아님을 다시금 '확신'한다. 그렇게 그들의 '자만추'는 막을 내린다.


나는 '구체적인 수치'와 '물질적인 가치'가 확신을 주는 순간을 목격했다. 키, 나이, 몸무게, 성적, 월급, 휴대폰 속 전화번호 개수, 자동차 유무, 입은 옷의 가격ㅡ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잣대들. 나 또한 이러한 잣대들을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탈락시키고 붙이고 하며 수많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는 '성격이 안 맞아서', '가치관이 달라서', '걔가 이상해서' 등 갖가지 이유를 대고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방에게도 소우주가 있다. 상대방에게도 그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그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고,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다. 상대방을 무자비한 '숫자'로 평가 내려버린 나의 왜곡된 마음에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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