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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8. 2019

47. 개나 소나 카페 한다고..

<개나 소나 카페 한다고...>


퇴사를 하고 엄청난 고민 끝에 카페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카페를 오픈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되는 것이다. 이디야, 투썸플레이스, 할리스, 커피빈과 같은 카페가 그 예이다. 나는 대출을 받아서라도 스타벅스를 오픈하고 싶었다. 별다른 홍보 없이 적정 수준의 매출이 보장될 것 같았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가맹점을 내주는 게 아니라 전부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즉, 건물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에게 일정 수준의 수익금을 주고 입점하는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건물 없는 내게는 스타벅스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조물주 위 건물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막상 프랜차이즈 카페를 오픈하려고 보니 가맹비(가입비), 초기부담금, 교육비, 재료비, 인테리어비가 무시무시했다. 카페를 오픈하는 두 번째 방법으로는 본인만의 카페를 차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를 선택했다.


개인 카페를 차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나는 카페 사장님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여러모로 조언을 받곤 했다. 커피맛에 물맛도 좌지우지한다는 말에 어떤 정수필터가 좋은지 물어보고, 커피머신은 어떤 게 좋은지 물어본다. 수냉식 제빙기와 공냉식 제빙기의 차이가 뭔지 물어본다. 카페를 차려본 사람,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처음이다. 어떤 머신이 좋고, 어떤 정수필터가 좋은지 모른다. 커피머신 설치도 전문기사님이 해주시니, 잘 설치해준 건지 잘못 설치해준 건지 모른다. 써보면서 이상 없으면 '잘해준 거구나' 하고 넘어갈 뿐. 이런 내게 한 마디 한다. 


"요새는 개나 소나 카페 한다고 설치네요."


한 마디의 말로 사람을 죽인다. 한 마디의 말로 한 사람의 인격체를 짓누른다. 내 가슴을 생으로 후벼판다. 그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두어 명의 사람도 내 가슴에 칼을 쑤셔 넣는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개나 소나'라는 말을 아무대다 갖다 붙인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개나 소나'라는 말을 자주, 그리고 쉽게 쓰곤 한다. 


'개나 소나 BMW를 타고 다닌다'

'개나 소나 책 낸다고 난리네'

'개나 소나 유튜버 한다고 함' 

'개나 소나 갖고 있는 애플 에어팟'


'개나 소나'라는 말에는 그 사람의 권위의식이 들어있다. 돈 있는 사람만 타던 BMW를 아무나 타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특출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이 작가라고 불리며 책을 출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쁘거나, 재밌거나, 콘텐츠를 뛰어나게 잘 만드는 사람들만 유튜버라고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만 가지고 있던 희귀했던 아이템이었는데, 별 볼 일 없는 '아무나'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되어버렸다고 어이없어한다. 이처럼 오만한 말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와 '아무나'를 구분 지으려고 하는 특권의식에 차있는 말이 어디 있을까? 이 세상은 특별하거나, 뛰어나거나, 재능 있는 사람만의 세상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하거나, 뛰어나거나, 재능 있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나 본인이 원하는 차를 타고, 본인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다. 그 누구나.


'개나 소나'라는 말에는 타인의 생각과 선택을 무시하는 태도가 담겨있다. 외제차를 타던, 명품을 사던 그건 사는 사람의 선택이다. 글을 쓰던, 동영상을 쓰던, 뭘 하든 간에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도 본인이 책임진다. 우리는 그 사람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개나 소나'라는 말에는 타인의 가능성을 짓밟는 폭력이 드러나있다. 연예인이 되던, 작가가 되던, 유튜버가 되던, 공무원이 되던 그건 그 사람의 선택이다. 그 사람 앞에서 '개나 소나'라고 말하는 건 "넌 '개'나 '소'나, '아무나'야"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왜 시작조차 못하게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걸까? 왜 한 사람의 가능성은 무시하는 걸까? 그것도 말 한마디로, 무자비하게! 사람 개개인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연예인을 꿈꾸다가 유튜버가 될 수 있고, 작가를 꿈꾸다가 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미래를 앞서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생은 무엇보다 가능성이 넘치고 찬란한 거다. 말 한마디로 그 가능성과 찬란함을 앗아가는 건 잔인하다.


개나 소나 카페를 차린다고? 카페를 차리는 건 내 선택이다. 잘되던 망하던 내가 책임진다. 내가 차린 이 공간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만든 음료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내가 만든 이 공간에서 난 여유로움을 느낀다. 그 행복과 여유로움 속에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난 이 카페를 계기로 내가 미래에는 뭘 선택하고, 뭘 하고 있을지 기대되는 하루를 살고 있다. '개나 소나'라는 말로 나를 짓밟지 말라, 그 쉽게 뱉은 말 한마디로 내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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