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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03. 2019

48. 신입사원이 된 후배가 카페에 왔다.

<신입사원이 된 후배가 카페에 왔다.>


카페에 대학교 후배 두 명이 찾아왔다. 둘 중 한 명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연구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계약직 직원으로 입사했다. 다른 한 명은 공기업에 신입직원, 그것도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한 명은 6개월, 다른 한 명은 1개월 차다. 둘은 입으로는 일이 힘들어 미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태도나 어투는 그 누구보다 당당했다. 주변에서는 아직도 취업을 못하고 힘들어한다. 그 둘은 그들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한다는 기쁨, 취준생을 벗어났다는 행복감, 취직 한자의 여유와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지켜보는 나는 사회생활 선배, 퇴사 선배로서 코웃음을 쳤다. 후흥.


나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직장상사들에게 사랑받고, 어떻게 해야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지 줄줄줄 늘여놓는다. 갓 입사한 후배들에게 '열정을 바치지 마라', '너의 재능을 100% 다 보여주지 마라', '일은 그 누구보다 튀게 해라', '입사를 시점으로 퇴사준비를 해라'라고 말한다. 거의 30분가량을 주야장천 이야기하다가 앞에 앉아있는 후배들의 표정을 본다. 이해가 전혀 안 되지만, 선배가 하는 말이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래, 이해가 안 되는 게 맞다. 이상한 게 맞다. 왜 직장상사들에게 당연하게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회사에 열정을 바치지 않고, 본인의 재능을 감춰서 보여주는 게 왜 사회생활을 잘하는 걸까? 조그마한 일도 크게 보이도록 튀게 행동하는 게 사회생활일까? 나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미안, 내가 멍멍이 소리좀했네. 다 쓸모없는 이야기야. 다 잊고 너네 이야기 좀 해봐."


학교에서 일하는 후배 한 명은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한다. 시키지도 않는데, 수당을 주는 것도 아닌데 토요일과 일요일에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일한다고 한다. 6개월 차에게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시키나 물어본다. 가만히 들어보니 후배는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 본인이 맡은 일 외의 업무를 계속 맡게 되었단다. 후배에게 열심히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할까? 후배에게 너 열심히 하면 호구된다고 말해야 할까? 


고민 끝에 내 이야기를 조금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인력이 대거 유출되었다. 나는 그 당시 신입으로 입사했지만, 빈자리를 메꾼다고 온갖 일을 도맡아 했다. 홍보부스도 나가고, 예산 관리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연구도 하고, 민원 대응과 교육도 받고, 국제행사도 담당했다. 일이 많으면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보고서의 퀄리티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몇 번이고 깨졌다. 회계팀에서 깨지고 팀을 돌아가면, 과장님께 깨졌다. 과장님께 깨져서 의기소침해 있으면 팀장님께 또 깨졌다. 아무도 내게 안 가르쳐준다고, 나는 처음이라고 속으로 수십 번 하소연하지만 소용없는 일임을 안다. 회사는 정글이었다. 


결론적으로는 퇴사했지만, 회사에서의 경험은 무가치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배운 마케팅을 토대로 카페를 홍보하고 있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카페 페이지를 개설하고 한 달 만에 400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회사에서 배운 CS(Customer service)는 카페에 오는 손님들에게 보다 적극적이고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회사에서 배운 엑셀로 카페의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고, 자재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잡무를 빨리빨리 쳐내는 스킬을 배웠기 때문에, 카페에서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는데 손이 빨라졌다.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해야 하는 후배의 업무량은 확실히 많다. 하지만 많은 업무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을 구분하게 된다. 시간이 점차 흐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업무를 수월하게 해결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더 중요한 일을 하게 되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더 다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회사에서의 '본인'을 만들어 나가는 거다. 힘내자, 힘내라, 멋지다 후배야!


이제 갓 공기업에 입사한 후배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취준생이라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갔으니. 그런데 이 후배에게도 고민이 있었다. 바로 '학벌'이었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같이 입사한 후배들을 보니 다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잘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말 보잘것없는 고민이다. 중요한 건 학벌이 아니라 '본인'이다. 학벌은 사회생활 일이 년이면 다 세탁된다. 누구나 알아주는 대학교 나왔다고 그 사람이 일 잘하는 거 아니다. 대학교에 따라서 연말평가 때 S, A, B, C, D를 받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본인이 얼마나 팀원들과 협력하여 일을 잘하는가,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본인이 어떠한 실적을 세웠는가가 중요한 거다. 결론은 '본인'을 보여주면 된다. 아, 처음부터 너무 평가는 기대하지 말자. 처음엔 틀리고, 실수도 하면서 부딪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릴 뻔했다. 내가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내가 좋고, 뛰어나고, 멋진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본인이 되고 싶은 '본인'을 만들어나가는 거다. 힘내자, 힘내라, 멋지다 후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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