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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pr 05. 2019

49. 300원이 아깝거든요.

<300원이 아깝거든요.>


회사 다닐 때 내게 백 원은 의미 없는 돈이었다. 백 원은 사무실 서랍 안, 코트 호주머니 속 굴러다니는 그런 존재였다. 내게는 다달이 통장에 꽂히는 월급이 있었다. 가끔 출장비, 야근비, 명절휴가비 따위의 소소하지만 정기적으로 돈이 들어오니까 살만했다. 회사에서 멋쟁이로 보이기 위해 계절별로 옷도 사 입었다. 밥 먹고 나서 오천원 주고 사 마시는 식후 커피는 꿀맛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카페를 하다 보면 백 원도 정말 소중해진다. 백원도 정말 아까워진다. 그 백 원 하나로 기분이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한 손님이 양 손이 짐을 한 가득 들고 카페에 들어온다. "여기서 노트북 작업 좀 할 수 있나요?" 당연히 되죠. 어서어서 들어오세요, 손님! 손님은 콘센트가 있는 4인석 좌석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연결한다.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진하게 한 잔을 달라고 하신다. 보통 카운터에서 선결제를 하고 주문을 받는데, 어지간히 급하셨나 보다. 나중에 나가실 때 결제하시겠지 싶어서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커피 향이 솔솔 나는 아메리카노를 자리에 가져다 드렸다. 그러다 '앗' 소리가 들려서 테이블로 가보니, 손님이 음료를 쏟았다. 테이블 위에는 다른 카페의 음료 컵이 있었다. 거기다가 따뜻한 아메리카노 절반을 옮겨담다가 쏟은 거다. '왜 옮겨 담지?' 잠깐 의문이 생겼다. 우선은 행주를 가져와 손님이 쏟은 음료를 닦아드렸다. 잠시 뒤 손님이 나를 찾는다. "얼음 좀 주세요.", 그리고 또 잠시 뒤 "시원한 물 좀 주세요." 아, 왜 옮겨 담는지 알겠다. 그리고 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진하게 시켰는지도.


우리 카페의 따뜻한 아메리카노는 3,500원이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는 3,800원이다. 왜 따뜻한 음료와 시원한 음료에 가격차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단연 '재료'의 차이다. 따뜻한 음료에 비해 시원한 음료는 얼음이 들어간다. 전기 먹는 하마, 제빙기를 돌려서 얼음을 만들다 보니 가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원한 음료는 얼음이 녹으면서 밍밍한 맛이 날 수 있으니, 보통 반샷이나 한 샷 정도 더 넣어드린다. 오늘 오신 손님은 핫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 거다. 그것도 두 잔 분량으로. 그 손님은 300원을 아꼈지만, 나는 300원을 못 벌었다. 그 300원이 뭐라고 우울하고 속상하다. 그 300원이 아쉬워서 마음 아프다. 


오후 10시에 카페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러다가 호떡과 오뎅을 파는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날이 따뜻해졌는데도 아직 있는 그 포장마차를 빤히 바라본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보는데 동전이 없다. 가방에 굴러다니는 동전이 있나 찾아보지만 없다. 한 푼도. 아쉬운 마음을 접고 집으로 마저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여기 계좌이체도 되나요?" 사장님은 손가락으로 포장마차에 붙여진 안내판을 가리킨다. '농협 000-0000-0000-00' 나는 새우, 무, 버섯 등등을 넣고 진하게 우린 오뎅 국물을 한 입 한다. 식도를 거쳐 뱃속까지 사르륵 따뜻해진다. 시원한 국물 속 오뎅을 하나 건져 간장을 찍어 먹는다. 나도 모르는 새 7개나 흡입했다. 어머. 사장님께 3,500원을 이체해드린다. 탈탈 털었다 정말. 후! 속은 후련하고, 마음은 따뜻하다. 행복한 하루의 마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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