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Jun 27. 2019

56. 처음 맞이하는 장마

카페를 오픈하고 처음으로 장마를 맞았다. 사정없이 내리는 이 비를 반가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악스럽게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창 밖 저 멀리 한편에 주차되어있는 내 차가 보인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잠시 중소기업에 취직했었다. 버스도 안 다니는 오지 산골에 있던 회사 탓에 부랴부랴 장롱 면허를 꺼내 들었다. 엄마는 딸의 입사를 축하하며, 기꺼이 본인의 차를 양보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조그마한 경차. 차의 뒷좌석에서는 김치 냄새가 났다. 앞자리에는 항상 먼지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매일 시장을 오가며 먹을거리를 사 왔던 엄마. 엄마는 양파, 대파, 마늘 뭉텅이를 항상 앞좌석에 두었다. 차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첫 취직, 첫 차에 대한 조그마한 나의 로망이 먼지 부스러기와 함께 깨끗하게 날아갔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입사하기 전까지 일주일의 여유를 주었다. 나는 집에서 회사까지 왕복으로 하루에 두 번 운전 연습을 했다. 조수석에는 엄마와 아빠가 교대로 탔다. 아빠랑 같이 운전할 때가 제일 무서웠다. 우회전하며 액셀을 밟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톨게이트에서 통행권을 뽑을 때 손이 닫지 않아 운전석에서 내리는 일이 잦았는데, 아빠는 그때마다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무던한 연습 끝에 나는 무사히 회사에 출근을 했었지(겨우!).


엄마의 손을 거쳐 내게 온 차는 벌써 5년째 나와 함께하고 있다. EBS 영어 라디오를 들으며 중얼거리던 출근길, 질질 울면서 입으로는 회사를 욕하며 소리쳤던 퇴근길, 현재는 우유와 재료들을 사러가는 마트와 카페로의 출근길, 그리고 신나는 음악을 듣는 퇴근길. 환풍기에 옹기종기 꽂혀있는 캐릭터 방향제,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서류들, 오늘 카페에서 사용할 재료들과 용품들이 한가득 들어있는 트렁크. 나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듯하다. 그동안 무심한 주인 때문에 꾀죄죄했던 차는 후려치는 장맛비를 시원하게 맞고 있다. '이런 날에 말끔히 세차해야지'하고 흐뭇하게 바라본다. 한산한 가게 안보다, 시원하고 감미롭게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두둑. 두둑. 흐려지는 마음이 빗소리의 리듬에 발맞추어 콩닥콩닥 기분 좋게 뛰는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54.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