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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l 11. 2019

57. 시간이 아닌, 생각으로 늙어가는 사람

<시간이 아닌, 생각으로 늙어가는 사람>


1. 한가한 카페사장

카페는 더운 여름이 성수기라고 하더니, 아직 그럴듯한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 더위로는 부족한가 보다. 빈 테이블 위에는 날벌레 몇 마리가 죽어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을 모조리 잡기는 어려운듯하다. '역시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는가 보다'라고 실없는 생각만 한다. 시시한 생각들만 하며 시간을 때운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손님 없이 하루를 마무리했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틀어놓은 잔잔한 음악소리는 송곳처럼 아프게 내 귀를 찔러댄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여유롭다고 생각한 하루가 지루하고, 재미없는 하루로 바뀐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온갖 잡스러운 생각이 나를 휩쓸고 지나간다. 

'지금이라도 카페를 그만둬야지 월세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빚을 내서라도 번화가로 자리를 옮길까?'

'그래도 여름에는 빙수를 먹어야하니까, 몇백만 원 투자해서 빙수 기계를 살까?'


직장을 다닐 때는 일이 없는 순간도 없었지만, 일이 없다면 날아갈 듯 기뻤다. 휴대폰 들여다보고, 동기들과 메신저를 주고받고, 웹서핑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났다. 자영업을 시작하니 해야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슬프다. 카페의 로망이 '여유'라고 생각했는데, '여유'가 이제는 무료함이 되었다. 그 무엇을 해도 하루가 쉬이 지나갈 생각을 안 한다. 만만히 보았던 시간이 도무지 흐르지 않는다. 인생에서 '시간'이 항상 부족한 것만 같았는데, 지금 내 앞으로 넘쳐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2.  무료한 시간, 뭘 할지 모르겠어.

가끔 본인들의 나이, 그리고 본인의 열정을 잊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벌써 늙었고, 시대에 뒤쳐져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무엇을 시작하든 늦은 나이라고 여긴다. 나에게 젊었을 때의 열정과 패기는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런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더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시간이 아닌, 생각으로 늙어가는 한 사람이다. 회사도 다녀봤고, 카페도 차려봤으니 이제 다 해봤다고 애늙은이 소리만 한다. 무언가 다시 시작하기에는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대학생 때의, 젊었을 때의 패기와 열정도 없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아직 내게 남은 시간이 많다고 여긴다면 나 아직 젊은 거 아닐까? 흘러가는 시간이 무료하다고, 심심하다고 생각한다면 나 아직 젊은 거 아닐까? 이렇게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조금쯤은 아쉽다고 여겨진다면 나 아직 젊은 거 아닐까? 


TV에서 '위 베어 베어스(We Bare Bears)' 애니메이션이 지나간다. 순수하고 천방지축 곰 삼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의 애니메이션이다. 수능을 위해, 취업을 위해, 자기 계발에 애쓰라는 주변의 눈치에 배웠던 애증의 '영어', 이제는 영영 필요 없을 것만 같고, 어디 써먹지도 못할 것 같은 '영어'  


그래, 순수한 마음으로 영어를 다시 배워보자. 

뭐 나중에 외국인 손님이 찾아 올 수도 있지! 

Welcome! What can I get for you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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