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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24. 2020

58. 카페를 두 달간 휴점 했습니다.

<카페를 두 달간 휴점 했습니다>


2018년 10월 30일, 정식으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2018년 11월, 애매한 능력밖에 없던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2018년 12월 13일, 가지고 있는 퇴직금과 애매한 능력으로 카페를 차렸다.

그리고 오늘 2020년 3월 24일. 카페를 창업한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경기는 안 좋았다. '카페'라는 업종은 '치킨집'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처음 창업을 할 때 주변 상권을 알아보고, 분석한 게 무색해질 정도로 주변에 카페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옆집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오픈 이벤트를 시작하니, 그 날은 손님이 80% 이상 줄었다. 

뒷골목에 새로운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가 생기고 나니, 공치는 하루가 많아졌다.

하루 종일 아무도 없는 카페에 멍하니 앉아있노라면 바쁜 삶이 그리워졌고,

카페에서의 느긋함과 여유로운 삶은 이제는 무한경쟁시대의 경주에서 뒤처지는 삶처럼 느껴졌다.


속으로 수백 번 후회했다. '회사에서 존버 할 걸', '창업을 해도 왜 하필 카페를 했는가'

하지만 나는 겉으로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내가 틀렸다는 말은 끝끝내 듣기 싫어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믿기 싫어서.

내가 떠나간 직장에서 이번에 승진한 직장 동기, 전문가로 성장하는 후배들 사이에서 

'퇴사 후 망한 케이스'가 될까 봐 두려워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오히려 나의 애매한 능력들이 발현되기 시작되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바느질, 아크릴화, 펜 드로잉, 베이킹을 시작했다.

나는 하나를 배우면 계속 끈질기게 파고드는 끈기가 없던 탓인지, 유행에 휩쓸려 이것저것 배운탓인지

당최 하나에 집중을 못하고 여기저기 호기심이 많은 성격 탓인지, 모두 애매하게 했다.

이래 가지고는 새로운 창업을 하기도, 누군가를 가르 칠 정도의 능력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는 저 모든 것들을 하기 위한 '재료'들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뭐라도 될 줄 알고, 힘들게 모은 돈을 온갖 학원에 때려 부었다. 

그때부터 집 한편에 쌓여있던 온갖 재료들, 나는 이 '재료'들을 활용하기로 했다.


'원 없이 재료를 빌려드립니다. 커피 한잔하며 당신의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가세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 동네 아줌마들, 

퇴근 후 취미생활을 즐기러 오는 직장인들, 동네 꼬꼬마들과 대학생들도 가끔 놀러 왔다. 그렇게 나는 2020년의 막을 열었고, 새로운 단골손님들을 만들며 다시 활기찬 하루를 보냈다. 행복감도 잠시, '코로나바이러스'의 음산한 기운이 온 골목을 휩쓸었다. 

아직까지 우리 지역은 청정지역이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지만, 결국 종교의 힘에 굴복당했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따뜻한 공간의 카페는 부지불식간 차게 식어버렸다. 

그래도 손님이 올 거라 믿고 사두었던 우유와 온갖 재료들은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 처분되었고,

제빙기가 만들어낸 얼음들은 만들어지기 무섭게 녹아내렸다. 하루 종일 켜 둔 난방기 소리만 빈 공간에 요란하게 울렸다. 문을 여는 게 적자가 된 지금, 나는 카페 앞에 결국 '잠정적 휴점'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지금쯤 열어도 될까?', '이제는 괜찮을까?'라고 잠시라도 생각하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 확진자가 늘었다. 

정부와 지자체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요구하고 있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벌써 두 달 가까이 휴점에 돌입했다. 

마스크도 못 구했어요.



 


엄마는 내가 뭐라도 될 줄 알고, 힘들게 모은 돈을 온갖 학원에 때려 부었다.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미술 학원 공부방- 몸으로 하는 건 영 꽝이었는데 그림은 내게 잘 맞았다.

나는 그림대회에서 두어 번 사을 받았다. 그러나 최고상인 대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인이 되고 싶은 엄마의 영향 때문일까, 교내 독서감상문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러나 교외에서는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었다. 요리를 잘하는가 싶지만, 4인분 이상은 만들지 못한다.

왜 나는 특출하게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왜 뭐든 애매하게 하는 걸까?

- 1화, 저는 애매한 인간입니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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