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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y 11. 2020

79. 긴급재난지원금에 소외된 사람들

<긴급재난지원금에 소외된 사람들>


오늘은 급하게 카페 휴무에 들어갔다. 부랴부랴 <오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무입니다, 우리 다음번에 만나요>라고 안내용지를 내붙다. 오늘은 우리 가족 비상 소집일이다. 코로나 19로 정부 및 지자체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하는데, 컴맹에 폰맹인 부모님은 나와 동생을 긴급 호출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식탁에 갖가지 음식들을 내놓는다. 아빠는 어서 오라며 우리를 안아준다. 엄마는 "우선은 먹고 하자"라고 말하며 "앉기 전에 여기 밥이랑 국좀 날라라"라고 덧붙인다. 그래, 우선 오랜만에 다 같이 얼굴 봤는데 먹자. 즐겁게. 고슬고슬한 밥, 식도를 뜨근하게 해주는 국물, 갖가지 밑반찬.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식탁. 즐겁다. 그래, 분명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온 집안에 고성이 오간다.


"아니, 공인인증서 비밀번호가 뭐냐니까?"

"은행에서 10044756이라고 했대도!"

"아니, 공인인증서는 비밀번호에 문자랑 특수기호가 들어간다니까?"

"그런 비밀번호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는디?"

"아니! 그럼 지금까지 계좌이체는 도대체 어떻게 했는데?!"

"전화로"


일은 10분 전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우선 정부에서 주는 긴급재난지원금 금액부터 확인하기로 한다. 긴급재난지원금 조회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름하고 주민번호를 입력한 후에, 공인인증서를 입력하게끔 되어있다. 해당 정보를 입력하면 나는 얼마를 받는지 조회하고, 가구 및 가구원 산정에 오류는 없는지 체크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아직 긴급재난지원금 신청도 안 했는데, 고작 '조회'하는 과정의 초입 부일뿐인데 벌써부터 막힌 거다. . 지난 어버이날만 해도 부모님께 효도하자고 마음먹었는데 그 마음가짐은 순식간에 박살나 버리고 말았다. 일도 아닌데 울컥해버린 내가 미워서 속상하다. 엄마 아빠가 분명 모를 수 있다는 걸 뇌는 이해하는데, 입이 말을 안 듣는다. 나도 모르게 고성을 높이고 모진 말이 나간다.

* https://긴급재난지원금. kr



마른세수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호들갑이다. "공인인증서 없으면 나는 재난지원금 못 받니? 어쩌니. 일을 어째." 나는 고작 '조회'하는 것뿐이라고 엄마를 달래 본다. 엄마는 울쌍이다. 왜 그렇게 초조해하나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사정은 이랬다. 텔레비전이나 뉴스에서 온통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라고 난리 더란다. 그래서 부모님은 바로 주민센터를 방문했단다. 첫 번째 갔을 때는 사람이 많아서 그대로 되돌아왔고, 두 번째 갔을 때는 지원금 신청도 5부제로 진행하고 있어 신청일이 아니란다. 세 번째로 5부제에 해당되어 방문했더니 하필 그날이 연휴라서 다음 주에 오던지 온라인 신청하라고 했단다. 그마저도 신청기한을 놓치면 못 받는다고 엄포를 놨다고. 그래서 부모님은 허겁지겁 컴퓨터 좀 만지작거리는 딸내미, 아들내미를 부른 것이었다. 


나는 아빠를, 동생은 엄마를 맡아서 신청해주기로 한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은 사용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신청할 수 있다. 5월 18일부터는 은행영업장이나 주소지 관할 주민센터에서 방문 접수할 수도 있다. 지자체 긴급재난지원금의 경우에는 지자체마다 상이했다. 부모님의 거주지 지자체 홈페이지에 접속한 후, 휴대폰 인증을 받고, 신청서를 제출하고, 대상자가 되는지 확인 전화를 받은 후, 최종 수급이 가능했다. 어째 어째 우여곡절 끝에 신청을 끝냈다. 휴. 한숨 돌리고 있는데 아빠는 옆에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메모한다.

"다 신청했는데, 그걸 적어서 뭐하게?"  

"바다에 같이 어업 하는 형님들은 당연히 안된다고 생각하더라고. 마을 이장들이 돌아다니면서 안내는 하는 모양인데, '아이고 그런 걸 어떻게 하니' 이러면서 다들 안 해. 아빠가 도와주려고."

아빠는 덧붙여 말해준다. "하루 종일 바닷바람 맞아가면서 새벽 세시, 네시까지 작업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그런데 이놈의 낙지는 요새 씨종자가 말랐는지 보이지도 않거든.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서 노동하는데 배 기름값도 안 나오는 거야. 공치는 하루가 많지만, 그렇게 배 타고 육지로 돌아오면 쉬느냐? 아니, 밭일을 하거든.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쪽파며 고구마며 농사질을 하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시간 여유가 어딨어, 컴퓨터는 언제 만져? 뭐 신청을 하라는데 갈 시간도 없고, 컴퓨터도 못하니까 '아, 나는 못 받는갑다' 하고 마는 거지. 나는 복이 있어 너네가 도와줬지만. 얼마나 안타까워."


정작 지원금이 절실하게 필요한 건 그들일 텐데, 정작 '긴급재난지원금'에 소외된 사람들 또한 그들이라니 아이러니다. 인터넷 신청도, 방문신청도 간단한 일이다. 안내문도 잘 정리되어있고, 절차도 간단하다. 하지만 하루를 온통 바쁘게만 사는 사람들에게, 그 간단한 일마저 노동의 후순위가 되어버린다. 아빠는 같이 배 타는 형님들, 이웃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나라에서 지원금 준다는데 신청했는가? 아, 새벽배 갔다 인자 들어온가? 그럼 쉬고 내일이나 같이 해볼까? 내가 하는 방법을 아는디 해줄테니까..." 전화기에 불날정도로 통화하는 아빠를 바라본다. 저 사람이 우리 아빠라는 게 참 좋다. 통화를 끝낸 아빠에게 "나도 카페에 요 며칠 여유가 있는데, 도와줄게!"라고 말해본다. 노트북 조금 두들기는 간단한 일로 부모님께,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추신) 엄마, 아빠! 화내서 미안해. 사랑해요.

재난지원금 받으면 같이 장도 보고, 집에서 맛있는 것도 해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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