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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y 17. 2020

80. 나는 가치가 미미한 그것들을 죽였다.

<나는 가치가 미미한 그것들을 죽였다.>


날이 점점 따뜻해지니까 카페에 손님이 왕창 늘었다. 아! 카페의 손님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거미, 하루살이, 콩벌레, 엄청난 소리로 윙윙 날아다니는 대왕 파리까지 아주 다양하다. 부지런한 거미씨는 바로 어제 망가뜨려놓은 집을 다시 예쁘게 지어놨다. 바닥을 쓸어보니 야밤을 불태우던 하루살이들이 장렬히 전사해있다. 가게 앞에 할머니들이 가꾸는 텃밭이 있어서 그런가 콩벌레 두어 마리가 입구에서 서성거린다. 어렸을 때는 콩벌레가 너무 귀여워서 동네방네 콩벌레를 모으러 다니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콩벌레가 내 살갗에 닿는 상상만 해도 온몸이 소름이 인다. 곤충들이며 벌레들은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그 모습, 그 상태 그대로인데 나만 바뀌었나 보다. 세월이 먹으면서 나의 외면은 성장했지만, 내면은 겁쟁이가 되었나 보다.


오늘의 카페는 이 작고 작은 카페의 손님들을 카페 밖으로 내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우선 거미씨부터. 나는 빗자루를 들어 거미줄을 휘휘 감는다. 거미씨는 부서지는 집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한다. 나는 거미씨를 문 밖으로 쓸어내린다. 거미집을 부순 게 이번이 몇 번째일까, 거미씨를 문 밖으로 쓸어 내 보낸 게 몇 번째던가. 그런데 수십 번 반복된 이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작은 생명이 빗질에 온몸이 쓸려내려 몸을 비틀비틀거리는 모습은 애처롭다. 직접 거미를 만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빗자루를 통해서 거미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빗자루 밑에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그 작디작은 생명체를 한 번의 손짓으로 쓸어내리는 것은 조금 무서운 일이다. 다음은 내가 '카페 역대 최고의 진상 손님'으로 이름 붙였던 하루살이과 벌레들. 흰 벽에 매달려서 죽어있는지라 벽을 퉁! 쳐주기만 하면 우수수수수 떨어진다. 죽어있는 벌레들은 먼지를 쓸듯 수월하게 쓸어내린다.  

https://brunch.co.kr/@aemae-human/132


이어서 콩벌레는 빗자루로 툭 치니 데구루르르르르 굴러간다. 잘 가!  마지막으로 남은 대왕 파리. 아, 대왕 파리는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어찌나 잘 날아가는지 결국 오픈 시간까지 못 잡았다. 손님들이 보면 싫어할 텐데 싶어 마지막까지 애써보지만 번번이 포획에 실패한다. 나는 여기 시골마을에서 농약을 팔고 있는 친구에게 안부도 물을 겸, SOS를 쳐본다. "헤이 농약킹, 잘 지내나. 마치 삭힌 홍어 같은 농약 어디 없습니까. 벌레들이 냄새 맡고 도망갈만한 거" "10년 전 농약은 독해서 잡초고 벌레고 싸그리 다 죽이는데, 요새 농약은 사람이 실수로 먹고 사고가 많이 나는 바람에 엄청 순해졌어. 전기 파리채 어때? 요새 5천 원이면 하나 사던데." 친구의 권유에 나는 바로 전기 파리채를 사 왔다. 건전지를 넣고 버튼을 누르니 푸른 광채가 돈다. 때마침 앞에 날아가는 파리를 향해 휙 휘둘러본다. 치지지직! 나는 너무 놀라 전기 파리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귓고막을 울리는 지져지는 소리. 손끝에서 느껴지는 네트에 걸린 파리의 묵직함. 그래, 이 느낌.

 


어렸을 때 잠자리의 양 날개를 잡고 좋아했었다. 그러다가 내 체온에 날개가 녹아버린 잠자리가 비실비실해지면 '에이, 죽었나 봐'하고 땅에 내던졌었다. 한때는 장수풍뎅이가 유행이었다. 나는 젤리를 무진장 먹여 덩치를 키워서 싸움을 붙였다. 학교 앞에서 500원에 팔던 싸구려 염료로 물들어있는 병아리. 나는 모이랑 같이 사와 박스에 넣어두고 삼일이 지나자 '엄마가 키워줘'하고 내버렸다. 다리가 꺾인 방아벌레, 변기에 내려간 올챙이, 스트레스받아 사육장에서 죽어버린 햄스터 등등.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두려워지더라. 내 손에 꺾여나간 생명들의 단말마 '찍'소리가, 내 발에 짓눌린 생명들의 묵음이 두려워지더라. 내가 누른 버튼 하나에 전기로 몸이 지져 죽은 파리가 힘없이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나는 곧 익숙해질 테지. 쇼케이스에 달라붙어있던 날벌레들을 휴지로 꾹꾹 눌러죽였을때처럼, 매일같이 카페에 오는 불청객들을 내쫓기 위해 빗자루를 휘둘렀을 때처럼. 내가 앗아간 것들의 생명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니까. 벌레니까 괜찮을 테지. 익숙해질 테지. 그럴 테지.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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