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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y 21. 2020

83. 그대, 꿈속에서는 좀 쉬어

<그대, 꿈속에서는 좀 쉬어>


안녕, 그대.

그대, 오늘 하루도 잘 보냈어? 이른 아침부터 회사로 출근하고, 일하고, 또 밤늦게까지 일하고 오는데 어떻게 '잘' 보낼 수 있냐고? 그러게, 내가 너무 답이 뻔한 질문을 했나? 그래도 부디, 간절히 바라건대, 그대에게 오늘 하루가 '잘' 보낸 하루였길 바래. 몸은 하나인데 맡은 일은 열개고, 실수하면 욕먹으니 온 신경을 업무에만 집중하고, 그 와중에 상사 눈치를 보며 버틴 그런 하루 중에도 잠깐의 행복이 그대 옆에 있었길 바라. 맛없는 구내식당 메뉴에 웬일로 치킨강정이 나왔다던가, 회사 앞 카페에서 1+1 이벤트 행사 중이라 동기와 함께 반값에 커피를 마셨다던가, 바빠 죽겠는데 카톡을 보내온 친구와의 대화가 끊기 아쉬울 만큼 정말 재밌었다던가, 부장님이 점심식사 후 방귀를 뀌는 바람에 킥킥거리고 웃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그대, 요새 통 잠을 못 잔다고 들었어. 일어나서 세수하는 순간부터 자기 직전까지도 업무 생각만 달고산다며. 퇴근 후에는 모두 잊고 지내려고 하지만,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늘 '업무'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한다며. 심장이 옥죄이는듯한 답답함을 느끼고, 온몸을 휩싸이는 긴장감이 24시간 지속된다며. 피곤해서 자야지, 이젠 진짜 자야지 하는데도 못 자다가 겨우내 지쳐 잠든다며. 언젠가, 어느 순간부턴가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되는지 더부룩하다며. 어쩔 때는 음식이 살짝 올라오는 것 같이 트림도 한다며. 그런 와중에 자기 계발을 위해 공부까지 한다며. 공부를 못하고 자는 날이면 자신을 채찍질하고, 운동을 못해서 몸이 뒤룩뒤룩 살찌는 모습을 보면 자괴감까지 들어서 슬프다며.


나는 물었어, "그래도, 잠을 자는 동안은 모든 걱정, 고민은 잊고 잘 자겠지?" 그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 "웃긴 거 말해줄까? 꿈속에서도 일하는 꿈 꾼 거 있지? 얼마 전에 맡은 프로젝트를 꿈속에서 진짜 열심히 한 거야. 뭔가 집중도 잘되는 거 같고, 진짜 집중해서 일을 끝냈어. 뭔가 뿌듯함까지 올라왔었는데 꿈이더라. 웃겨." 웃기다고 말하는 그대의 눈에 뭍은 피곤함을 보면 나는 그저 씁쓸한 미소만 지어줄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그대는 덧붙였지. "언제는 업무 하나를 실수해서 팀장님한테 깨진 꿈을 꿨는데, 나는 '죄송합니다'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단 말이지. 깨어보니 꿈이라서 화나는 거야. 꿈속에서조차 내 마음 가는 대로 못하다니. 팀장님 얼굴에 서류를 집어던질걸. 꿈속에서 그걸 못해서 아쉽더라." 그대의 말에 나는 그저 '그러게, 책상을 뒤엎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어.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대. 칠흑 같은 밤을 보냈으면 좋겠어. 고민도, 걱정도, 심지어 꿈도 꾸지 않고 깜깜한 잠을 잤으면 좋겠어. 그대, 꿈속에서는 좀 쉬어. 멀리 서나 내가 그대 잠든 곁에서 잔잔하게 빛나는 별이 되어줄게. 그대가 어둠 같은 꿈을 꿀 때, 내가 그 곁을 비춰줄 테니. 부디, 그대, 꿈속에서는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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