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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n 02. 2020

84. 나도 예쁜 사람이에요.

<나도 예쁜 사람이에요>


요 며칠간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일기를 쓰자면 '날씨는 맑음, 카페로 출근을 했고, 일을 했고, 퇴근시간이 되자 퇴근했고, 집에 와서 잤음'으로 끝나는 그런 나날이었다. 너무나 평탄하달까, 평범하달까, 굴곡 없달까. 뭐 그런 나날이었다. 처음에는 큰 일 없이, 무탈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에 감사했다면, 지금은 뭔가 모르게 내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진다. 나는 이 지루한 나날에 자그마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사장님, 오랜만에 택배 시키셨네요!"


택배기사님은 자그마한 박스 하나를 들고 유리문을 통통 두들긴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기사님께 카페의 자리 한편을 내어드린다. "벌써 여름이 온 것 같네요. 앉아 계세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내려드릴게요." 기사님은 늘 그렇듯 호탕하게 웃으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건넨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싸장님!" 얼음이 찰랑 거리는 커피를 건네자, 기사님은 목인사와 함께 문을 나선다. 잠시의, 그 짧은 만남만으로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 기사님의 밝은 목소리와 밝은 에너지에 힘을 얻는다. 1분 남짓한 시간의 여유를 즐긴 기사님과 나는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다.


퇴근 후 집에 와서 택배 상자를 열어본다. 두근두근. 이틀 전 나는 손톱에 붙이는 젤 네일 스티커를 주문했다. 얼마 전 한 손님으로부터 커피를 주문받고 카드를 받아 결제를 했는데, 그 순간 손님의 반짝거리는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된 손톱, 길쭉하고 가냘파 보이는 손톱, 그리고 그 손톱에 올려진 형형색색 네일과 보석들. 너무나 아름답고, 또 부러웠다. 난 내 손톱을 내려다보았다. 짧게 깎여진 손톱, 넙적 넙적한 손톱. 나도, 나도 저렇게 예쁜 손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부푼 기대감을 안고 젤 네일 스티커를 주문했더랬다. 짧은 손톱에 스티커를 붙이고, 여유가 많이 남은 스티커를 손톱깎기로 자르고, 붙이고, 자르고를 반복했다. 처음이라 영 어설픈 손짓으로 완성한 다섯 손가락을 본다. 


'나도 이렇게 꾸미면 이쁜 사람이구나. 내 손이 이렇게나 이뻤구나. 나도 이쁜 점이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그 후로 틈만 나면 내 손만 내려다보았다. 샤워를 하다가도, 양치를 하다가도, 출근길에도, 청소를 하다가도, 휴대폰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계속. 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저 손톱에 이 스티커를 붙인 거 하나, 그 작은 변화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했다. 투박하게 생긴 내 손에 짤막하게 붙어진 형형색색 스티커 하나하나가 너무도 예뻐서, 내 손이 너무도 예뻐서 행복할 뿐이다. 



P.S) 카페 음료제조시 위생상 문제없도록 위생장갑을 착용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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