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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n 09. 2020

85. 나도 잘하는 악기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잘하는 악기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날이 풀렸다. 따뜻해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녹아내렸다. 사람들은 집 안에만 있다가 조금씩 밖으로, 한산하고 쾌적하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곳을 떠났다. 관광지가 아닌 이상 동네 한켠에 있는 우리 카페는 한산하다. 단골손님들도 밀린 여행을 가버렸고, 동네 이웃주민들은 수목원으로 숲으로, 산으로 마실을 나갔다.


그때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4분 길이의 동영상을 보내주며, 요새 친구가 살아가는 일상의 근황을 전해준다. 손님도 없는터라 동영상을 소리 내어 켜본다.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 음악이 흘러나오고, 친구는 그 노래에 맞춰 드럼을 친다. 두둥. 두둥탁. 음악에 몸을 맡기며, 드럼을 신명 나게 두들기고, 입으로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친구.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드럼을 연주하는 친구. 친구는 당당하고, 쾌활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나, 정말 너무나도 멋졌다. 그리고 부러웠다.

순간 나는 무슨 악기를 연주할 수 있나 생각해봤다. 피아노, 기타, 드럼, 오카리나, 우크렐라, 플룻, 바이올린, 하모니카. 무수히 많은 악기들이 있지만, 내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단 하나도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시간에 실습 점수를 받기 위해 연주했던 리코더, 캐스터네츠, 실로폰, 단소. 실습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오로지 그 목표를 위해서 연주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책상 서랍장으로 아니면 쓰레기봉투 속으로 버려졌던 악기들이었다.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오로지 나를 위한 악기 연주는 한 번도 없었다. 문득 그 사실이 서글퍼졌다.


언젠가 제주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게스트하우스라 조금 설레고, 긴장했던 것 같다.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친구도 만들고, 여행도 하고, 참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게스트하우스에 가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서로 둘러앉아 노래도 하고, 악기도 연주했더랬다. 사교성도 없고, 노래도 못 부르고, 잘하는 악기 하나 없었던 나는 그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내일 일찍 일어나서 여행해야 하니까, 들어가서 쉬는 것뿐이야'라고 나를 다독였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지난날이 조금 아쉽다. 살면서, 살아가면서 잘하는 악기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진것 하나 없어도, 빈털털이라도, 두 손이 비어있어도, 잘하는 악기 하나만 있다면, 아니 노래라도 조금 잘했더라면 나를 위해 연주하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노려해주는 그런 행복감을 알 수도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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