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13. 2019

14. 샤워하면 깨어나는 괴물

독기가 빠져나가는 중

<샤워하면 깨어나는 괴물>


1. 샤워하면 깨어나는 괴물

내 안에 독기가 가득했다. 이놈의 독기가 얼마나 지독한지 이상한 버릇이 많이 생겼다. 그중 하나는 혼자 있을 때마다 중얼거리는 버릇, 특히 샤워할 때마다 욕을 중얼거리는 버릇이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도 업무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 보면 하루의 불쾌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밥 먹는 것도 잊고 하루 종일 두 개의 모니터만 번갈아 보는 장면,

생각하던 것처럼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지 않자 어떻게 해결할지 고뇌하는 장면,

팀장님이 내게 '생각이 없냐'라고 수십 번 다그치장면,

야근하며 힘들게 작성한 문서를 파쇄기에 넣던 장면


이러한 장면들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읊조린다, '시발'-

사실 나는 뒤늦게 이 버릇을 알았는데, 부모님께 퇴사를 보고 드릴 때나 돼서야 알게 됐다.

딸이 퇴근하고 침대에서 한 시간은 멍 때리고 누워있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샤워하러 갔단다.

딸이 샤워만 하면 자기 혼자 소리 지르고 욕을 해대는데 얼마나 걱정이 됐겠나.

그나마 딸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가 하고 두고 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퇴사하고 나서도 한 동안 이 증세가 지속됐다.





2. 독기가 빠져나가고

통장에 들어오는 '비정기적'인 수입을 보면 자연스럽게 욕심을 버리게 된다. '비정기적'인 수입을 보면 돈 이외의 다른 것에서 카페를 운영하는데 의의를 찾게 된다. 그저 한 명의 손님이라도 이 카페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가길. 음료를 다 마시고 카페를 나서는 길이 꽃길로 보이길. 손님에게 '나만 아는 카페'가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런 내 마음이 통해서 일까? 한 달 사이 단골손님이 제법 생겼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날이다.


단체손님 6분이 들어왔다. 나는 카페 안을 빠르게 스캔하며 자리를 살펴본다. 4인석 자리는 비어있는데, 그 옆의 2인석 자리에 단골손님 한 분이 앉아계신다. 별 수 없이 좌석이 없다고 안내해드렸다. 그때 단골손님이 벌떡 일어난다. " 저는 저쪽 자리도 편해요. 제가 옮길게요." 단체손님도 그 말을 들으시더니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응대한다. 단체손님은 들어온 순간 4인석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 앉아 계신 손님도 자발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준 것. 이 조화로운 하모니가 하루의 시작을 특별하게 만든다.


저녁이 되자 신혼부부인 단골손님이 들어오신다. 두 분은 항상 퇴근하고 음료를 마시러 오곤 한다. 많이 지친 듯 보이지만 서로가 있어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스 카페라떼와 바닐라라떼를 한 잔씩 시키고 테이블에 앉는다. 잘 내린 커피를 자리로 가져다 드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 분이 웃으며 새해 인사를 건넨다. 새해가 되면 으레 하는 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말이 이렇게도 따스했다니- 형식상 새해 되면 문자로, 카톡으로 주고받는 이 인사말이 이토록 가슴을 적시는 말이었다니- 나는 떨리는 맘으로 대답했다. "두 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잠시 뒤 또 다른 단골손님 입장했다. 이 분은 항상 책 한 권을 들고 오셔서 읽는다. 아무래도 손님이 적은 카페다 보니 여유를 즐기기에는 제격인가 보다. 오늘은 책이 없어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친구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단골손님이 소곤소곤 물어본다. "친구 생일인데... 케이크 좀 불어도 될까요?"


좋은 날을 방해할 순 없지! 흔쾌히 OK사인을 보냈다. 잠시 뒤 큰 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다 함께 부르는 정겨운 노래 "생일 축하합니다." 그 순간은 카페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축하했다. 잠시 뒤, 생일을 맞으신 친구 분이 케이크를 한 조각씩 잘라서 주신다. 가게에 있는 모든 테이블에 케이크 조각이 있다. 케이크를 받은 한 손님이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생일상 테이블에 전달하신다. "케이크 감사히 잘 먹었어요."


순식간에 온기 가득한 카페, 그 안에 있자니 온종일 마음이 따뜻해진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져서 가슴이 울렁거린다. 독기로 가득 차 있었던 내가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내 안의 독기들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이런 벅찬 감정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하루를 있게 해 준 내 용기에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13. 정기적인 것과 비정기적인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