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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09. 2019

13. 정기적인 것과 비정기적인 것

사실 상여금이 조금 많이 그립긴 해요.

<정기적인 것과 비정기적인 것>


욕심을 버리려고 하는데 생각보다 잘 안된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이번에 진급하는 선배에게 승진이고, 평가고 모두 양보하자고 마음먹었는데 괜히 기대하게 되는 그런 느낌-


그저 월세값만 벌자 싶었는데, 내가 들인 노력과 시간만큼의 인건비도 벌고 싶어 진다. 그리고 다시 월세값이라도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월세값만 내면 되는 줄 알았다. 정말이지 멍청했다. 여름, 겨울 내내 틀어놓는 냉난방기는 전기 먹는 하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나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관리비와 수도세도 손님이 없으면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얼마 팔지도 않았는데 원두며 시럽이며 파우더며 재료는 어찌나 빨리 떨어지는지. 설거지하면서 깨 먹는 컵은 애교다. 핼러윈데이, 크리스마스 등 온갖 기념일에는 거기에 맞는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할 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단골손님이 없는 날은 카페가 텅텅 빈다. 요새 경기 어렵다는 말은 진짜였다. 직장 다닐 때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니 경기가 어렵다는 말은 전혀 실감 나지 않았는데- 설 명절에는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상여금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설, 어버이날, 추석- 왜 이렇게 돈 나갈 데가 많은지 모르겠다. 게다가 월세, 전기세, 관리비, 수도세, 재료비도 자기 알아서 통장에서 잘 빠져나간다. 여윳돈으로 놔둔 돈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정기적으로 넣는 적금도 없다. 가진건 카페뿐인데 들여다보면 빈털터리다.


갑자기 '정기적'이라는 말이 부럽다. 정기적인 출퇴근, 정기적인 월급,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정기적으로 나오는 상여금, 정기적으로 넣는 적금, 정기적으로 만나는 직장동료와 업무상 알게 된 좋은 분들- 생각해보니 나도 '정기적'인 손님이 생겼다. 단골손님이 들어오면 "오늘도 아이스 카페라떼죠?" 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자꾸 회사가 그리워지는데, 그게 다 미련 같다. 이제 미련을 떨쳐버릴 때가 됐다. 새로운 출발을 했으니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련다. '비정기적'인 손님, '비정기적'인 메뉴, '비정기적'인 수입일지라도 괜찮다. 이젠 여기에서 익숙함을 찾아나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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