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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15. 2019

16. 애매한 오타쿠 上, 下

우리 회사 말고 다른 이야기하자.

<애매한 오타쿠 上, 下>


오타쿠란?

초기에는 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단순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의미를 포괄하게 되었다. 한국에는 비슷한 말로, 한 가지 일에 광적()으로 몰두하는 사람, 낚시광·바둑광·골프광 등으로 불리는 ‘광(狂)’이라는 단어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타쿠 [otaku, 御宅] (두산백과)



1. 애매한 오타쿠 上

요새 '오타쿠'라는 단어가 약간 다르게 쓰이는 것 같다. 광적으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이나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모두 '오타쿠'로 불리는듯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부끄러워졌다. 내가 애니메이션과 웹툰을 즐겨본다는 사실이 참 부끄럽다. 예전에도 그랬었던가?


오늘은 고등학생 손님 두 명이 왔다. 둘은 최근에 재밌게 봤던 소설과 애니메이션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다.


'나도 고등학생 때는 하이틴 소설과 만화책을 즐겨보곤 했는데..'


반에 한 친구가 순정만화 시리즈를 들고 왔다. 1권을 다 읽은 친구는 그 책을 나한테 전달한다. 난 1권을 본다. 수업시간에도 책상 아래서 키득 거리며 보고 있다. 어느새 다 읽고 나면 나는 2권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독촉한다. 빨리 읽고 내놓으라고-

야자시간에는 읽었던 만화책을 가지고 열심히 토론한다. 보통 순정만화에는 온갖 시련을 겪지만 당차고 밝은 성격의 여주인공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남자애는 3명이나 된다. 친구와 나는 누가 더 잘 어울는지 이야기하며 싸우곤 했다. 내가 여주인공이 돼서 남자 친구를 고르는 행복한 망상에도 빠진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술, 미팅, 취업이 주 이야깃거리였다. 회사에 취직하고 나서는 월급, 이직, 몹쓸 상사의 욕으로 하루를 꼬박 새울 수 있다. 어느새 나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가를 이야기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술은 빠질 수 없다. 술기운을 빌려 맘에 있는 응어리들을 다 풀어보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그게 일상이었다.




2.  애매한 오타쿠 下

늘도 카페를 잘 마무리지었다. 마침 야근을 마친 회사동기들이 술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왔다. 나도 술이 고팠던지라 바로 모임 장소로 뛰어갔다. 맥주 한 잔씩 시키고, 치킨도 주문했다. 역시 치맥! 


연초를 맞아 인사, 팀 이동이 화두였다. 누가 승진을 했네, 팀이 통합되어서 인원이 감축되었네 등. 나는 퇴사했지만 흥미로웠다. 회사에 남아있는 내가 아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어느새 비합리적이고, 짜증 나고, 온갖 꼰대 짓은 다하는 '팀장'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팀장이라는 자리가 팀원들에게 욕을 받는 외로운 자리일 수밖에 없구나 문득 생각 든다. 팀장 욕을 한창 하다가 제분에 못 이긴 회사동기는 소리를 지르더니 한 마디 한다. "아악 팀장 XX, 우리 이제 회사 이야기 그만하자."


테이블은 정적에 휩싸였다.


우리는 점심, 저녁회삿밥 먹으며 3년을 꼬박 본 친구다. 하지만 회사가 맺어준 친구다. 공채를 통해 만난 친구다. 우리는 분명 친하지만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른다. 회사 이야기 외에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할 말이 없자 다들 맥주만 들이킨다. 그러다가 '총무과의 어떤 직원이 사내연애를 한다더라', '그 직원이 누굴까?'를 시작으로 또 회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또 조용해진다. 특히 나는 퇴사한 직원이다 보니 이야깃거리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그럴 땐 또 맥주를 마신다.


회사를 나간 지금, 회사가 맺어준 눈 앞의 회사 동기들. '회사'라는 타이틀을 떼도 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난 눈앞의 좋은사람들과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다.


정적 속에 오늘 낮에 온 고등학생 손님이 떠오른다. 난 조심스럽게 네이버 웹툰 이야기를 꺼냈다. 월요일에는 '신의 탑', 화요일에는 '놓지 마 정신줄' 등등. 술김에 이야기하긴 했지만 상당히 용기가 필요했다. '오타쿠'라는 소리를 듣진 않을까 걱정이되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동기 중 한 두 명은 아예 웹툰을 안 보는지 '저게 다 뭔 소리야'하는 표정이다. 두어 명은 '나도 그거 알아! 나도 그 거봐!'라고 말한다. 또 다른 두어 명은 '그거 재밌어? 나도 볼까?'라고 말한다.


어느새 우리는 학창 시절 즐겨봤던 '천사소녀 네티', '카드 캡처 체리', '명탐정 코난', '원피스'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서 이야기했다. 새로운 이야기 소재거리를 만들며, 새로운 추억을 쌓으며-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해져 더는 '나'의 취향이나 감을 믿지 못하고 선택권을 '남'에게 넘겨버린 지금의 우리. 고작 식당 하나, 영화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패할까 봐 용기를 내지 못한다.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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