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카페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최근 서점&카페에서 독서모임, 북토크쇼 같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지라 평소보다 더 많은 손님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말', 그들은 너무도 말을 하고 싶어 했다. 손님들은 '대화'가 필요했다. 최근 코로나 시대에 자유롭게 수다를 나눌 수 있는 만남의 장이 없어진 탓이다. 손님이 '딸랑'하고 서점&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커피를 주문받고 커피를 내리고, 커피를 전달하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니 그 이후까지도. 차분히 앉아 차를 마시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이 흘러 손님이 서점&카페를 나서는 순간까지도 말을 한다. 덕분에 나는 엄청난 경청+대화 진행 스킬을 획득하게 됐다. 간혹 가다 손님들은 내게 너무 많은 대화로 지치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조금 피곤하기도 하다. 서점&카페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대화 소리에 귀가 지칠 때가 있다. 그런데 그건 귀의 육체적 피로일 뿐, 그것과는 별개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재밌다. 저마다의 인생, 저마다의 삶, 저마다의 사연과 지혜가 담겨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모셔놓고 진지하게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언제는 퇴근길에 자동차 배터리가 나간 적이 있었다. 출근할 때 라이트를 켜놓고 종일 주차를 해놓아서 배터리가 나간 거다. 출동하신 카센터 사장님은 내 차의 배터리를 갈아주시고, 온 김에 이것저것 손봐주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장님의 인상 이야기가 시작됐다. 옛날에 큰 여행사를 운영하고 계셨고, 거기에는 대절버스가 100대가 넘으셨단다. 하지만 이내 사업은 불황을 직격으로 맞았고, 여행사의 경험을 토대로 카센터를 차리셨다. 자신의 옷, 취미, 식단까지도 모두 내려놓았지만 자식의 교육만큼은 내려놓지 못했다. 그 덕에 서울에 유명한 대학을 나온 자식들은 이제 회계사나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사람들이 카센터 직원을 얕보는 설움도 있다. 하지만 자동수리는 기술,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사람들은 절실히 도움을 요청한다. 그럴 때 사장님은 레카차를 삐용삐용 하고 달려온다. 수리가 끝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차를 보면 손님들이 정말 좋아한다는 것, 그것 또한 일의 보람이라는 말을 한다. 어느새 사장님의 손엔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한잔 들려있다. 우리는 그 뒤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간혹 문자도 주고받는다. '담에 식사 한 번 해요'라는 형식상 말일뿐이라도. 사장님의 말을 듣고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모셔다 강의를 해달라고 할까'
또 다른 손님은 우리 서점&카페의 홍보대사이자 단골손님이다. 현재 3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시골 깊숙한 곳에 자라서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많이 했다. 가끔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이와 매칭이 잘 안될 때가 많다. 손님은 집에 우물이 있어서 우물을 길러다가 빨래를 했고, 태풍이 부는 날은 아빠랑 지붕으로 올라가 집을 고쳤다. 30대 중반이라는 게 믿기는가? 어떠한 사정 때문에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스무 살 때부터 일을 했다. 전자상가에서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왔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일하는 게 재밌어서, 또 보람도 있어서, 혹은 사회초년생이라 아직 사회의 쓴맛을 보지 못해 아주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시기라서, 몸을 갈아 일했다. 그러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끼고, 이런저런 알바와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지금의 '당신'이 완성됐다고 한다. 이렇듯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통된 점이 있다. 우리네 삶은 항상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가까운 친구도, 가족도, 사회도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현재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가 불안하고 고달프다고 여긴다. 하고 있는 일은 항상 순조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손님들은 지금의 삶을 충실히, 정말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최근 '나 때는 말이야'라고 시작하는 라떼시절의 멘트를 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런 라떼시절의 멘트는 힘든 시기를 거쳐온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대견하고, 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고난과 힘듦, 박애와 결핍, 그 모든 시기를 겪고 단단한 내가 된 지금의 나에 대한 자존심과 존경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라떼멘트는 그것에 비롯한 마음의 표현방식이 아니었을까.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손님들의 라떼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이 말이 떠오르곤 한다. 저마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책이 있고, 경험이라는 이름의 사전이 있다. 그렇게 책과 책이 모여 하나의 도서관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게 바로 '나'라는 존재다. 인생은 '나'라는 이름의 도서관에 책들을 하나 둘 채워 넣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성격이 다른 도서관들이 있다. 어린이 도서관, 만화책 전문 도서관, 그림책 도서관, 과학도서관 등등. 그렇기 때문에 손님들이 저마다 가진 도서관도 너무도 다채롭다. 각자가 가진 색깔이, 각자의 이름이 도서관이 너무도 눈부시다.
이제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애매한 공간, 서점&카페는 이제 손님들 각자의 도서관 한 편에 자리 잡은 한 권의 책, 한 편의 장르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