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은퇴한 후, 엄마는 아빠를 따라 조그마한 섬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살던 터전, 친한 친구들, 익숙한 생활패턴을 전부 한 순간에 포기해야 하는지라 엄마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아빠에게 섬으로 가기 싫다고 설득도해보고, 하소연해보기도 하고, 화도 냈다, 울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엄마는 아빠의 선택을 존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엄마는 이제 완전히 섬 생활에 익숙해졌다. 엄마는 더 이상 알람시계를 켜지 않는다. 볼살을 간질이는 아침햇살에 자연스럽게 눈을 떴고, 일어나자마자 호미를 들었다. 집 앞 정원(정원이라고 부르지만 화단 같다)을 거닐며 바지런히 일한다. 잡초를 뽑기도 하고, 자란 상추를 보고 '내일은 잡아먹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한다. 정원 한편에 심어놓은 꽃들은 어찌나 이름이 복잡한지, 손수 팻말도 달았다. 일어나서 별거한 거 없는 것 같은데 벌써 점심시간이다. 식탁에는 이제 해산물이 가득이다. 구운 생선, 바지락 국 등등.
딸이 이 식탁을 봤으면 분명 기겁했을 거다. 엄마는 가끔 내게 '너는 내 딸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곤 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부모님과 달리 나는 날것의 생선, 즉 회나 굴 등등의 해산물을 먹지 못했다. 미끄덩거리는 식감, 코를 후벼 파는 비린내, 그리고 어릴 때 산 낙지를 칼로 탕탕 내려치는 잔인함이 트라우마로 남아 해산물을 먹지 못했다. 특히 안도현 시인의 '간장게장'시는 내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었는데, 그 뒤로 정말 해산물을 손도 못 대겠더라(간장이 게한테 부어지는 순간, 엄마 게가 "얘들아,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고 말한다)
엄마는 아빠와 오순도순 점심을 먹고 나면, 집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집이 산 중턱에 위치해있어서 무척이나 가파른데(정말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다), 엄마는 게처럼 잘 걸어 다니신다. 어감이 조금 이상한가? 그런데 정말 '게'처럼 잘 다니신다. 집이 산 중턱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온통 바다라 그런지, 산에도 게가 산다. 처음에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았는데 엄마는 창틀에, 산속에 기어다는 '게'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게'란 참 신기한 존재구나 처음 깨달았다.
산책을 하고 나면 엄마는 항상 나에게 카톡을 한다. 바쁜 딸(사실은 바쁜척하지만)에게 방해가 될까 항상 전화가 아니라 카톡을 하곤 하는데, 카톡 내용은 항상 이렇다.
"딸, 누워서 별을 보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눕는 의자 같은 거 하나 사주면 안 될까? 돈은 지금 바로 보낼게"
"딸, 네이버에 보니까 정원에 자그마한 불빛 들어오는 동상을 놔둘 수 있더라. 인터넷으로 주문 좀 해줄 수 있어?"
엄마는 전자기기를 다루는 것에 참 약했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것도 몇 년간의 수련 끝에 겨우겨우 가능해졌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늘 '비싼'것만 산다. 그러니까 최저가 비교를 하면 그 반값에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색해서 바로 보이는 걸로 산다. 카드사 할인, 통신사 할인, 이벤트 쿠폰 할인 등등의 적용도 안 하고 날것, 그러니까 내가 싫어하는 날것!, 있는 그대로의 가격을 주고 산다. 대놓고 판매자가 할인쿠폰 쓰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엄마가 답답해서 어느 날부터 내가 엄마의 소비를 담당하게 됐다. 엄마는 싸게 사서 좋아하고, 나는 엄마가 실속 챙겨서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엄마가 사려는 것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엄마, 그 좁은 집에서 눕는 의자를 어디다 두게요?"
"불빛 들어오는 동상 그거 쉽게 깨지고 망가지는데, 비바람 불면 어떻게 해요?"
엄마가 구매하려는 것마다 딴지를 걸자 엄마는 "됐다, 내가 하마"라고 대답하지만, 나는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해서 엄마를 가로막는다. "아냐! 엄마 또 비싼 거 살 거지! 기다려봐!" 이런 대화는 생각보다 자주 반복됐다.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소비를 안 할 수 있을까? 카페일로 바쁠 때는 엄마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엄마! 지난번에 최저가 비교하는 법 알려줬잖아!" 엄마는 차분히 휴대폰 다루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 당장 그 물건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설명한다. 퉁명 맞은 딸한테 엄마는 "나중에 너도 너 닮은 딸을 낳아봐야지"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딸이 너무했네' 싶을 정도지만, 엄마는 늘 내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은 조그마한 탁자 하나 사주라", "이거 사면 어떨 거 같아?" 늘 한결같은 엄마를 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자, 만나는 빈도수도,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나누는 기회도 줄어들었다. 함께하는 생활이 없으니, 대화도 늘 거기서 거기였다. "밥은 잘 챙겨 먹니?", "별일 없니?", "힘내" 그러니, 어쩌면, 엄마는 외로웠던 건 아니었을까? 섬 생활을 정말 활력 있게, 꿋꿋하게, 그리고 또 재밌게 하고 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자식과 멀어져서 외롭지 않았을까. 엄마가 필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나와의 대화가 아니었을까. 물건을 매개로 해서 나와의 공통점을 찾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카페에서의 바쁜 일이 끝나자 엄마에 대한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못된 딸일까.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나의 하나밖에 없는 엄마에게 나는 왜 이렇게 철없이 굴까. 반성해야지 하면서도 왜 나는 반복할까. 문득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움, 죄스러움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 있어?"라고 시작하는 엄마의 첫마디에,
나는 "뭔 일 있어야만 전화하나! 그냥 엄마 목소리가 문득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라고 중얼거려본다.
엄마는 실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한다. 얼마간의 통화 끝에 이만 작별하려는 엄마를 붙잡고 한마디 한다 "매번 퉁명스럽게 굴고, 화내서 미안해" 엄마는 "한두 번도 아니고, 너 마음 다 알아. 그럼 이제 언능 쉬어!"라고 대답한다. 지금 당장 엄마를 보러 가고 싶다!
*빠진말 추가: 엄마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하자!
최저가로, 가성비가 좋거나 효용성이 좋지 않은 물건을 샀더라도 엄마한테는 합리적인 소비다. 유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