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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ug 11. 2021

5. 지금 딱 30살인데, 그 정도면 많은 걸

'애매한 인간' 인생 총 종합 요약기

오늘의 제목은 무척이나 길다. 그러다 뒤에 몇 자가 채 입력되지 못하고 글자 수 제한으로 잘려버렸다. 오늘의 제목은 <너 지금 딱 30살인데, 그 정도면 많은 걸 이룬 거 아니야?>다. 오늘은 노트북 자판에 손을 얹기 위해서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맥주 한 캔에도 잘 취하지만, 벌써 두 캔째 들이키며 글을 시작해본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는 아싸(아웃사이더)였는데, 그 이유는 외모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짧은 숏컷에 옷도 엄마가 사준 옷을 골라 입고 학교에 다녔다. 제대로 화장을 할 줄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나름 친하게 지낸 동기들이 소개팅을 하는데 대놓고 나를 빼놓고 가더라. 그때 사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인생 첫, 그리고 최대의 충격을 받았다. '외모'로 사회에서 소외받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경험한 거다. 그 뒤로 나는 그 무리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집단생활을 하지 않으니 굉장히 외로웠다. 또 고독했다. 하루 종일 대학교 캠퍼스에서 홀로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는 삶이 초라했다. 강의실에 갈 때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혼돈 속에 혼자 침전해 들어갔다. 그래, 참 외로웠다.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것도 참 정말 재미없는 영어 주간지 TIME 지를 해석하고 읽는 동아리였다. 하지만 나는 집단에 목마름을 느꼈기 때문에 금세 적응하고, 또 몰입했다. 그러다 보니 학점은 뛰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총(F) 맞지도 않은 애매함 그 자체였다. 교직 이수며, 온갖 기사 자격증을 따러 다니는 동기와 달리 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 중소기업에 취업했고, 이내 곧 때려치우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에 취직했다. 그것도 공공기관에! 나는 정말 이제 딱! 인생의 길을 잘 찾았다고 자부했다. 그때가 24살 때였다. 


직장생활 2년 차에 나는 이 회사에 뼈를 묻기 위해 대학원에 진입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논문을 쓰는 삶은 참 고달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 어째 졸업은 했다. 지금 누군가 논문을 보여주라고 하면 부끄러워서 불살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직장생활 3년 차, 내 나이 27살에 결혼을 했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한 학년 위의 선배랑 했는데, 선배도 졸업 후 빨리 취업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결혼 적령기'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다. 나 27살, 짝꿍 28살. 얼마나 귀여운 애기 신부와 애기 신랑인가! 그렇게 결혼하고 1여 년 정도 회사를 더 다니다 그만뒀다. 그리고 나는 카페를 차렸다.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카페는 이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창업한 지 일 년 만에 임신을 했고, 또 출산을 했다. 그리고 현재 내게는 3살 먹은 아들이 있다. 내 나이 30살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자영업과 병행하는 일은 정말이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짝꿍과 주말부부를 하고 있어 평일에 혼자 아이를 보고, 또 서점&카페까지 영업해야 했다.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100~200여 명의 사람들이 이 공간을 찾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지금 딱 30살인데, 그 정도면 정말 많은 걸 이룬 거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취직해서 직장생활도 4년 정도 해봤고, 대학원도 졸업하고, 논문도 써봤고, 결혼도 했고, 임신&출산&육아 쓰리콤 보도 해결했고, 퇴사 후 카페도 창업하여 이렇게 잘 운영(겉보기에는)하고 있으니 말이다(실제로는 아니지만).


나는 이 말을 들으면 '아, 내가 정말 잘 살고 있구나'라고 행복해졌다가, 이내 곧 지독하게 우울해졌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많은 걸 이뤘다는 그 알량한 비교우위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가, 온전한 내 삶을 살지 못하고 타인이 가진 것과 비교하며 '잘'살고 있는지, '못'살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슬퍼졌다. 많은 것을 이뤄 보이는 이 삶이 사실은 지독히고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도 괴로웠다. 거의 3년간 카페를 운영하며 현재 통장에 있는 잔고는 29여만 원 돈이다. 아, 물론 예적금은 없다. 집도 없다. 짝꿍과 주말부부 하며 살고 있지만 우리 명의의 집도 없었고, 그나마 살고 있는 곳은 전세 5000만 원짜리의 투룸인데, 그마저도 시댁이 내주어서 우린 말 그대로 전세금도 없는 셈이다. 이 글이 조심스러운 건 누군가는 가지지 못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고, 누군가가 추구했던 삶을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의 내 상황에 만족하고, 또 감사한다. 나름 하루하루를 알차게 즐기고 있기도 한다. 내가 괴로워하는 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질 수 없음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보는 나와, 실제의 내가 만들어내는 '간극', 이 '간극'이 무척이나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 나이에 많은 것을 이뤘다고 말하는 사람들, 나를 한없이 좋게 봐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만큼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나는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할 뿐이다. 처음엔 이런 고민 없이 쉽게 살아보자고 해봤다. 그냥 남들이 치켜세워주는 대로, 나에 대해서 말하는 대로 살아가지고 생각해봤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나를 멈춰 서게 했다.  


내 나이 30살에 많은 것을 이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이뤘고', '얻었고', '취득했다'는 그런 말보다, 그걸 떠나서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길. '저 사람은 30대의 하루를 저렇게 살아가는구나', '저 사람은 맥주를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좋아하는구나(20대 때는 소주만 마셨다더니)', '저 사람은 책과 사람을 좋아하는구나(그래서 주구장창 카페에서 독서모임만 해대네)', '저 사람에게 저런 면모도 있었네?', '저 사람은 곤란한 상황이 오면 인중에 땀을 흘리는구나' 


나의 30대를 한줄한줄 그 의미 없는 이력사항으로 채우기보다, 나의 30대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는 버릇', '나의 취미'로 나열되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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