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시절 나는 행사나 공모전 개최하는 일도 업무 중 하나였는데, 업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정량적 수치였다. 사람들이 몇 명이나 참여했고, 참여 만족도가 몇 프로며,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은 몇 건이나 되는지 이런 '숫자'가 내 업무성과가 됐다. 어이없는 건 퇴사한 지 3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이런 정량적 수치를 엄청 따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등등 손님들이 남기는 리뷰가 몇 개나 됐는지 하나하나 체크했다. 뿐만 아니라 손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해서 도표로 보고서까지 만들었다. 아, 물론 이 보고서의 상신인과 결재자는 동일한, '나'다. 작업이 피곤하긴 해도 내가 운영하는 서점&카페에 대해 개선점도 찾고, 운영에 대한 현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나름 장점이 큰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손님들이 남긴 리뷰를 체크해보고 있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방문 후기가 올라왔다. 짧게 요약하자면 '서점이라고 부르는데 동의하기 어렵고, 큐레이션도 되어있지 않은 공간, 그렇다고 음료가 주요 수익도 아닌 것 같은 특이한 공간'이라는 거다. 사실 한동안 이 리뷰를 보고 멍하니 움직일 수 없었다. 나름 나는 이 공간을 서점이자 카페로 정의 내렸고, 그러한 목적과 취지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특색 있지 않다'는 말도 왜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나는 리뷰를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맥주 한잔 하며 보기도 하고, 그 다음날 소주 한잔하며 보기도 했다. 리뷰를 보고, 내 공간을 돌아보고, 리뷰를 보고, 내 공간을 돌아보니 이제 알겠더라. 손님은 나를 걱정해줘서 한말이구나. 내가 봐도 이곳은 영 엉망진창이었다. 책은 두서없이 진열되어있었고, 주력 판매대가 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카페라도 하자니 좌석이 애매했다. 음료 메뉴판이 한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랬다. 공간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실질적 '상품성(수익성)'이 떨어졌다.
나는 공간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구조도 조금 바꿔보고, 책 진열도 조금 바꿔보고 음료 메뉴판도 바꿔봤다. 때마침 당근 마켓에서 꽤 괜찮은 테이블과 의자도 저렴하게 팔길래 가진돈을 탈탈 털어 구입도 했다. 그러고 나서 공간을 되돌아봤다. 예전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아니 꽤 괜찮아졌나? 아니, 아니었다. 다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카페인지, 서점인지, 공방인지, 이 공간 자체가 정의 내리기 애매할 정도로 모호함 투성이었다. 내가 애매하기만 해서, 공간도 애매한가 보다. '정말 특색이 없구나.' 그 사실이 오늘따라 정말 슬프게 다가온다.
며칠간의 고뇌 끝에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SNS에 올렸다. '저는 이 공간이 카페인지, 서점인지, 공방인지 무언가 애매모호하더라고요 (...) 애매함 투성이 사이에서 무언가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우리 함께 인연을 만들고, 추억을 쌓으며 함께 이 공간을 가꿔나가 보요!" 그래, 어떤 공간인지 혼자서 결정 내리기 어렵다면, 지금까지 이 공간을 방문해준 수많은 손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고민해보자!
그런데 올린 내 글을 보고 리뷰를 남긴 그때 그 손님이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닌가! 헉! 조금 긴장을 하고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클릭했다. 이번에도 꽤 긴 메시지였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본인이 올린 글에 상처 받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손님이 참 마음이 여리구나. 공간을 방문하고 그것에 대한 만족도는 개개인별로 다를 수 있고, 그것에 대해 감상평을 남기는 건 본인의 자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에 걸려할 것을 생각해 본인도 마음이 쓰인 거다. 왜 이렇게 사람들 마음이 착하고 여리고 또 따뜻한 걸까. 그런데 그 와중에 냉정하게 평가해준 말도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방문하고 싶지는 않은 공간"이라는 말. 아, 뼈 있어라. 솔직한 리뷰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맥주를 들이킨다. 꿀꺽꿀꺽. 이럴 때 나는 어떠한 말로도, 어떠한 행동으로도, 얼마나 맛있는 맥주를 먹더라도 회복이 안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꼭 내가 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뜨끈한 물에 샤워를 끝내고 나면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다. 요새 최고의 안주는 군아몬드옥수수다. 오도독 오도독 씹어먹으며 헤롱 해질 때까지 맥주를 마신다. 혼자서 센치해져서 취하는 밤이면 음악을 하나 듣는다. 최근 최애 곡은 위아더 나잇-깊은 우리 젊은 날이다. 야밤에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잠이 슬슬 오면 양치를 하고 이부자리에 눕는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이불은 한여름에도 폭신하고도 두터운 것으로 고른다. 그리고 이불 네 면을 내 몸 쪽으로 말아 넣는다. 이불 상단 우측 모소리는 내 오른쪽 어깨 아래로, 상단 좌측 모소리는 내 왼쪽 어깨 아래로, 하단 우측 모소리는 내 오른발 아래로, 하단 좌측 모소리는 내 왼발 아래로. 이불의 사면을 내쪽으로 꽁꽁 잘 말아 넣는다. 바람 한 줌 들어오지 않도록. 그렇게 이불에 푹 쌓인다. 두껍고 폭신한 이불이 나를 감싸 안으며 지친 내 마음을 말랑하게 만들어준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러다 마음이 조금 더 가라앉으면 얼굴까지 이불속에 파묻는다. 이불이 조금 들썩거려도, 이불 안이 조금 습해져도, 내 온몸을 빈틈없이 감싸주는 이불이 있어서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