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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Aug 09. 2021

3. 사장님은 어디 사람이에요?

손님들에게 생각보다, 정말 놀랄 정도로, 의외로 자주 듣는 질문은 '사장님 어디 사람이에요?'다. 


그건 사실 나의 애매함 때문이기도 하다. 내 말투가 경상도, 어디 서울 언저리, 때론 전라도로 전국 팔도 방언이 복합적으로 섞여 나왔기 때문이다. 군인이신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사를 다녔다. 전남 광주, 경북 예천, 경남 진주를 떠돌았다. 아빠는 광주로 발령받았다가 곧 진주로 발령받았고, 예천으로 발령받았다가 다시 진주로 재발령 받는 바람에 내 지역 정체성이 더욱 모호해졌다. 나는 이상하게도 초등학교 졸업사진 찍을 때, 중학교 졸업사진 찍을 때마다 진주로 이사오곤 했는데, 그 바람에 동기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학창 시절 내내 없다가 졸업할 때 전학 온, 그것도 졸업사진 찍을 때 전학 온 아주 요상한 아이로. 


그래도 마지막 종착역은 진주였다. 고등학교는 안정적으로 다녔었다. 내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난 공부를 빼어나게 잘한 건 아니었고, 그렇다고 못한 건 아니었다. 나름 성적이 좋아 이화여대, 서강대 등에 면접을 보러 가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나는 면접 공부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입시공부도, 입시설명회도 들어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면접'의 'ㅁ'도 몰랐다. 면접장에는 몇 명의 심사위원이 있는지, 어떤 질문들이 오고 갈지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면접은 물미역처럼 미끄덩미끄덩거릴 수밖에. 서울로의 면접은 참 서글펐다. 온 가족이 오로지 나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행을 함께했다. 왕복 고속버스비용으로만 40만 원을 넘게 썼다. 하지만 면접장에서의 시간은 5~10분 남짓으로, 제대로 답변한 질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게 참 눈물 나고, 또 억울했다. 그렇게 나는 그냥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학으로 정시를 넣어서 들어갔다. 


그런데 아직까지 내게 무언가 응어리 같은 게 남아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일까? 그때의 나 자신에 대한 속상함일까? 회사에 입사해서 동기들의 학력이 이화여대, 한국외대, 홍익대와 같은 유명대학 이름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학력이 주는 권위에 짓눌리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지만, 이미 사내에서 형성된 학력 라인 때문에 나의 노력은 정말 하잘것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부림쳤다. 학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 노력과 열정으로 보여주겠다고, 업무 성과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번아웃이 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나니 내 말투도 시간이 지나자 점차 서울스러워졌다. 


그리고 현재. 내 말투는 경상도+전라도+서울 말씨를 섞어놓은, 그래서 어디 지역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들 정도의 애매한 색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점차 내 안의 모순을 느꼈다. 나는 어디 사람인가?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그게 또 중요해졌다. 손님들이 그만큼 자주 물으니까, 그게 첫 만남에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니까, 그만큼 일상화된 질문이니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괜히 지방에 있으니까 서울 사람처럼 보이고 싶기도 했다가, 이 지역에 나는 몸담고 있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갈 테니까 '진주 사람'처럼 보이고 싶기도 했다가, 내가 태어난 전라도 광주사람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가, 온통 뒤죽박죽 했다. 이런 내 이중적 모습에 스스로를 비난해보고, 또 비판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끝끝내 나의 지역 정체성을 찾지 못했다. 그저 진주에 조금 더 오래 살았으니 '진주 사람으로 치기로 할까' 하는 정도의 결론을 내릴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곧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순간순간마다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학력, 지역 같은 것들이 주는 권위가 무언가 석연치 않다고. 그런 것으로 나를 단정하고, 정의 내릴 수 없다고.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 속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하고 따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저항하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또 따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내 말투를 들은 손님들마다 본인의 가까운 지역의 말투로 듣곤 한다는 거다. 전라도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손님은 '어? 전라도에서 오셨어요?'라고 바로 알아듣고, 경상도 사람들은 '억양이 경상도이데?'라고 알아듣는다. 혹은 '경기도? 서울 사람이세요?'라고 묻기도 한다. 내 말투는 여러 손님들의 지역력을 포섭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훗) 그래, 이제 보니 알겠다. 그런 게 뭣이 중헌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건 그때의 그곳에 살았던 내가 하나 둘 모인 건데. 경상도에도 살았고, 전라도에도 지냈고, 서울에도 다녔던 그런 '내'가 모이고 모여 애매함, 그 자체인 '나'를 만들어낸 건데. 현재의 나를 만들어준 그 좋은 시간들을 구분하고, 나누고, 하나를 정하는 건 억울한 일이다. 하나를 정할 필요 없잖아? 모두가 나인데.

내 몸을 쪼개는건 불가능하지. 안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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