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면 짧은, 그렇지만 짧지도 않은 4년이라는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다. 지금 와서 4년이라는 시간을 회고해보면 힘들기도 했지만 또 행복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 직장 동기들과 커피 한잔씩 하며 수다를 떨었던 추억, 후배가 생겨 함께 고난을 헤쳐나가자 울부짖던 지난 기억들이 방울방울 솟아난다. 하지만 인간관계, 업무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추억이고 나발이고 일단 내가 살고 보자'라고 나를 사정없이 몰아붙인다.
생각해보면 참 나는 성격이 급했다. 급한 성격 때문에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일단 일을 빨리 처리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일이란 건 자고로 끝이 없고, 묵묵히 해낸 자에게는 '일복'이라는 이름으로 일이 쌓이기 마련이다. 난 주어진 일이 있으면 그 일을 끝마칠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하루 종일 내 머리를 맴돌았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다가, 내가 이내 지쳐 잠들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이내 내가 눈을 뜨는 순간 '일'은 정면으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새로운 '일'이 눈인사를 한다. 싱긋.
지금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카페에서의 일상은 어떨까? 많이 변했을까? 조금은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까? 육체는 조금 힘들지 몰라도, 정신적 스트레스는 없을까?
나는 하루 평균 4시간을 잔다. 4시간. 믿기지 않겠지만 진짜다. 4시간. 서점&카페에서의 일상은 직장시절 못지않게 무척 바쁘게 돌아갔다. 출근하자마자 바닥, 유리창, 테이블 등등 눈에 보이는 대로 청소한다. 서점&카페답게 우후죽순 쌓인 책들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정렬한다. 책 택배 상자들을 나른다. 간간히 커피 한 잔 하러 오는 손님이 있으면 가볍게 수다도 떨며 근황 토크를 나누다 커피를 내린다. 독서모임을 운영하기 위해 멤버를 모집하고, 단톡방을 만들고, 일정을 조율하고, 도서를 정한다.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노트북을 펼친다. 그리고 엑셀 파일을 열어 간이 장부를 작성한다. 월세, 관리비, 전기세, 원두값, 파우더 값 등등을 계산한다. 나름 함수(IF, COUNTA, SUM 골고루 다 쓴다)도 쓰며 자동화해본다. 계산기를 톡톡 두들기며 대충 정산을 끝내고 나면, 우리 서점&카페의 SNS에 들어간다. 형형색색의 이미지들을 자르고 오려 카드 뉴스를 만든다. 오늘의 메뉴, 오늘 소개할 책과 독서모임 등등을 정리해서 올린다. 아, 손님이 왔다! "어서 오세요, 체온 측정 부탁드립니다. 앞에 명부 작성 또는 전화 부탁드려요. 네네. 꼭 해주셔야 해요. 여기 알코올 소독 부탁드려요. 네, 이제 주문하시면 됩니다"
이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도 가끔 어이가 없다. 그렇게 힘들다고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워서 회사를 그만뒀으면서, 또 하루하루를 바쁘게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내 명의의 예적금 통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하루를 미친 듯이 살고 있다. 나는 이게 무척이나 고뇌스러웠는데 짝꿍은 단 한마디로 끝내버린다. "너는 천성이 개미야." 부정하고 싶은데 입이 안 떨어지네. 하.
나는 퇴사 후에는 '베짱이의 삶을 살 테야!'라고 굳건히 다짐했건만 결국 또 일을 하고 있다. 손님이 없으면 좀 쉬고 여유도 부려야 하는데 뭔가 할 일을 찾아다닌다. 하이에나처럼 어슬렁어슬렁. 그러다 뭔가 일할 거리가 생기면 미친 듯이 일해댄다. 독서모임도 재미있어서 한 그룹, 두 그룹, 세 그룹 늘렸다가, 이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그룹수가 많아져서 곧 일이 되어버렸다. 재미있어서 하다 보니 일이 많아졌다. 여유를 찾아 시작한 일이 글쎄 손이 많이 간다. 근데 또 그걸 미친 듯이 하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 '아, 베짱이 되긴 글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