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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l 29. 2021

1.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봐요.

나는 직장생활이 뭐 같아서 퇴사했고, 퇴사 후 낭만을 찾아서 카페를 오픈했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놈은 내 생각은 쥐꼬리만큼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개업한 지 고작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은 임대계약기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내게는 퇴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직장도 없고, 퇴직금도 몽땅 써버린 나는 한계까지 몰렸다. 생존을 위해 카페를 잡화상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소품도 가져와서 팔고, 책도 가져다 팔면서 이놈의 카페 멱살을 움켜잡으며 끝끝내 버텼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지나 나는 임대차 재계약을 했다. 무려 재계약을!


뭐 그만큼 먹고살만했나? 그건 아니었다. 그저 '그 달의 월세를 낼 수 있을까, 없을까, 간신히 냈나?' 할 정도로 버텨냈다. 거기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폐업 위기에 있는 소상공인에게 지원한 지원금의 힘이 가장 컸다. 이 돈으로 월세며 전기세며 관리비며 내니까 꼴깍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 버틸만했다. 그렇다고 버티는 시간이 무척 괴롭다거나 고된 것만은 아니었다. 손님들과 찐친 못지않은 우정을 다지기도 했고, 마음 맞는 손님들과 맥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나름 재밌고 행복했다. 나도 그 과정을 통해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님을, 같이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닫고, 또 배웠다.


'공간'하니까 생각났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운영하고 있는 이 '공간'을 무어라고 부를지 아직 결정 내리지 못했다. 카페일까? 서점일까? 공방일까? 문화공간일까? 뭘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나라서 이 공간도 애매하기만 했다. 카페 같기도 하고, 서점 같기도 하고, 공방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거. 하지만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우를 수 있고,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애매한 것도 특징이 되고, 장점이 되고,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카페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 서점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 공방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 문화공간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을 다 우리 '애매한 공간'에 초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애매함의 힘이란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굉장히 심란한 상태다. 이 공간을 좋아해 주는 손님도 분명 있고, 나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속상하다. 손님이 방문하는 것만큼 수익은 나지 않는다. 일은 일대로 하고 있지만,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다. 손님과 이야기하는 건 재밌지만 또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2년 8개월의 시간 동안 나는 뭘 얻었을까? 예금과 적금은 없지만, 행복과 보람을 얻었다. 하는 일은 즐겁다. 손님들과의 일상들도 참 행복하다. 하지만 이 행복이 돈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행복과 보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엄청난 괴리감이 나를 휩쓴다. 행복하지만 고뇌스러운, 이상스러운 감정에 도통 잠이 오지 않는 하루다.


고뇌에 대한 해답은 되려 손님이 주었다. 손님들과 책맥 모임을 만들어서 벌써 3개월째 하고 있는데, 나는 그날따라 고작 캔맥주에 취했다. 아니, 힘든 내 감정에 취했을까? 모르겠다. 나는 그저 온통 무거운 내 마음의 짐을 울부짖듯 토로했다. 그런데 손님이 딱 이렇게 말하는 거다.


"본인은 이 모든 걸 놓고 포기하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거 하나가 딱 좋아서 못 놓는 거구나. 손님들이 진상이거나 조금이라도 악독하고 못됐으면 놓았을 건데. 이놈의 모임에 진상이 한 명이라도 등장했으면 그 얄팍한 끈을 놓을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도저히 못 놓는구나."


아! 내가 왜 힘든 감정싸움을 하면서까지 이 공간을 버텨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현실적인 문제는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며 나를 짓눌렀다. 나의 즐거움, 행복, 보람 그 모든 긍정적 감정을 압도할 만큼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 손님들과의 이 시간과 순간이 너무 행복하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나는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구나. 나는 힘들어하면서도 이 길을 계속 걷겠구나.

 

카이저돔 다크 1L 맥주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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