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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Sep 12. 2021

8.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게 버거울 때

오늘은 우리 서점&카페에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서점&카페에서 운영하는 특별한 이벤트(1+1, 비 오면 음료 할인 등)도 없었고, 독서모임도, 문화프로그램도 없었다. 행사가 없으니 텅 비어버리는 이 공간에서, 나는 오늘도 영업시간을 지키고 있다. 오롯이. 혼자서 그 긴 시간을 감내하고 있다. 처음에는 손님이 없는 시간에 낭만을 찾아 떠났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기도 하고, 그동안 미뤄뒀던 책 읽기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하지만 언제나 시린 현실 앞에서는 낭만도 더 이상 '낭만'으로 남지 않는다. 손님이 없는 날, 텅 비어버린 날, 생각이 많아지는 날에는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게 버겁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병원 앞에서 전복죽 가게를 하셨다. 엄마는 아침 일찍 우리를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가게 문을 여셨다. 하교하고 나서도 엄마는 오지 않았고, 잠들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 쯔음 엄마는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늘 돌아오는 길에 무언가를 사들고 오셨는데, 하루는 치킨, 하루는 만두, 하루는 튀김을 사 왔다. 동생과 나는 늦게 오는 엄마가 늘 기다려졌다. 오늘은 무슨 맛있는 음식을 사들고 올까? 엄마는 언제쯤 올까? 허겁지겁 음식을 먹다가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엄마와 아빠가 주고받는 눈짓은 무언가 공허하고, 또 아득해서 그때의 나는 고개만 갸우뚱거린 채 다시 간식에 몰두했다. 동생한테 뺏길까 봐 더 치열하게 먹었다.


간식을 다 먹고 나면 우리는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늘 엄마에게 "오늘 장사 잘됐어?"라고 묻곤 했는데, 엄마는 늘 '잘됐다', '안됐다'라고 명확한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손님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엄마가 지난번에 맨날 죽 먹으러 오는 단골 할아버지 이야기해준 적 있지?"

"응! 엄마가 만든 죽이 제일 맛있다며?"

"오늘은 엄마가 전복죽 할인해드린다고 했거든, 근데 할아버지가 글쎄 '제값은 받아야지!'하고 돈을 주시는 거야. 그러시면서 할아버지가 '내가 비록 혼자지만 돈은 많아! 부자야!'라고 하시더라고. 알고 보니 진짜 부자였던 거야. 그 병원 주변에 건물들이 다 할아버지 거래. 엄마가 오늘 부자 할아버지한테 전복죽을 팔았다니까!"

"우아! 엄마 죽이 진짜 맛있나 봐!"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재밌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왜 아직까지도 이 순간을 기억하는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겐 이 순간이야말로 정말 재밌고, 특별하고 또 행복했나 보다.


하지만 2년이 채 안돼서 엄마는 전복죽 가게를 접으셨다. 나는 "장사가 잘 되는데 왜 문을 닫아?"라고 물었는데, '이제 엄마가 만들어주는 전복라면도 못 먹으려나', '매일 같이 사들고 오는 간식도 못 먹으려나' 그게 걱정이 됐다. 엄마는 이런 날 보고 그저 싱긋 웃었다. "울 똘이(내 별명)랑 시간 많이 보내려고 그러지!" 그때 나를 바라보고 웃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희망을 갖고 차린 가게를 정리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생계를 위해서 시작한 일인데, 그로 인해 매일 밤늦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오늘 나는 꿋꿋하게 영업시간을 버텨냈다. 결국 끝날 때까지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았다. 집에 있을 아이와 짝꿍을 생각하니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돈이라도 많이 벌었으면 좋았을 텐데. 손님이 없을 줄 알았으면 우리 가족하고 시간을 보내는 건데. 엄마가 전복죽 가게를 운영하며 느꼈을 그때의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을까 가늠되지 않았다. 한없이 침전하는 슬픔, 죄책감과 우울함, 두려움과 불안함 이 모든 감정이 나를 순식간에 잡아먹는다.


퍼뜩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영업시간이 끝나고 40분이 더 지나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게 문을 닫았다. 라디오에는 잔잔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고, 신호등은 시간을 지켜 착실하게 빨간불과 초록불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집에 거의 다 와 갈 때쯤 근처에 유명한 팥빙수 가게 가보였다. '건너편이네' 나는 굳이 차를 돌려 팥빙수 가게 앞에 차를 정차했다. 가게를 나온 내 손에는 팥빙수가 덜렁 들려있다.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간다. 팥빙수가 녹을라 발걸음을 빨리한다. 걸음이 가볍다. 경쾌하다. 재빠르다. 집으로 들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와 짝꿍에게 "오늘 간식은 빙수다!"라고 외쳐본다.


돌고래 소리를 내는 아이와 나를 보고 수고했다고 웃어주는 짝꿍을 바라본다.

'나 그래도 오늘 하루 온전히 잘 살아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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