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내 눈썹을 바라봐

우리 카페&서점에서는 다양한 독서모임을 진행한다. 책을 좋아하는 단골손님 몇 분과 함께하던 독서모임이 이제는 다채로워졌다. 멤버도 많아졌고, 주제도 다양해졌다. 환경에 대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카페 앞 논밭에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기도 하고, 사진인문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우리 마을 곳곳에 사진을 찍으러 출사를 다니기도 한다. 이 외에도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또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산다.


최근에 독서모임 멤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외모'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겉보기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첫인상을 판가름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마저 단정 지을 때도 있다. 외모는 때론 우리에게 트라우마를 주기도 했고, 행복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자기 관리의 결정체라는 명목으로 우리는 외모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태생적 외모가 뛰어나지 않으면 피부라도 가꿔야 한다는 말에 온갖 크림도 발라본다. 매일 아침마다 형형색색의 화장품을 바르며 조금 더 나은 내 모습으로 가꾼다. 세월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조금씩 성숙해질수록, '어른'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할수록 전에 비해 외모에 하는 집착을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완전히 떨쳐버릴 순 없다.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옷을 가꿔 입고, 머리를 매만지며, 얼굴을 치장한다.


외모가 주는 힘은 어느 정도 일까? 외모가 나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고, 모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지만, 젊은 날의 우리는 '외모'에 많은 것을 걸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유치원에서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가 참 까무잡잡했다. 피부색만으로 이렇게 촌티 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촌스럽기도 했다. 하얀 피부는 미의 기준이었고, 나의 까무잡잡한 피부는 미의 기준을 벗어났었다. 그런데다 어린 유치원생이 콧물까지 훌쩍거리니 얼마나 못생겼었을까. 나는 유치원생, 즉 학교도 들어가기 전 6~7살 때 이미 외모가 주는 힘을 알아버렸다. 하얀 피부의 아이를 더 예뻐하는 선생님, 눈이 초롱초롱 커다란 아이를 더 좋아하는 선생님이 보였다. 그리고 그 선생님의 기호에 따라 움직이는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도 점차 세상의 미적 기준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나는 선생님의 사랑을 더 받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나를 사랑해달라고 외쳤다. 장난감을 양보해보고, 선생님 앞에 애교를 부려보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애정에 결국 나는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엄마가 이거 선생님 가져다주래요!"


"정말? 정말이야? 엄마가 주라는 거 맞으셔?"


"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내민다. 그건 바로 엄마의 결혼반지였다. 한없이 찬란하고 예쁘게 반짝이던 그 반지를 선생님께 내밀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나를 사랑해주길, 특별히 나를 더 예뻐해 주길 바랬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나를 사랑해주었다. 평상시보다 나를 더 둘러보고, 나를 더 아껴주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하더라. 그때 나는 어린 나이지만 처음으로 '씁쓸하다'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세월이 한참 지나 선생님께 드린 게 그냥 반지가 아니라 결혼반지였다는 사실에 나는 깜짝 놀랐고, 엄마는 그때의 내 감정을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었고 다행스럽게 여고에 갔다. 거릴꺼없이 편하게, 정말 편하게 다녔다. 머리도 숏컷이었는데, 어찌나 편하던지 매일 아침이 가벼웠다. 그러다 고3 때 뜬금없이 외모에 눈을 떴다. 아니, 반 친구들 몇몇이 연애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침 일찍 등교해서 야자하고 나면 밤 10시인데 언제 연애를 하는 거지? 그런데 연애를 하는 아이들이 참 예뻐 보였다. 남자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쑥스러워도 하고, 두 눈을 찬란하게 빛내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이토록 아름다워 보이는 거구나,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뭐, 연애의 껀덕지도 없는 나이지만 미모를 가꾸고 싶었다. 그 당시 오일과 로션을 섞어 바르면 피부가 광이난다는 말이 있었다. 나는 다음날 부엌에서 식용유를 꺼내 로션과 섞어 바르고 등교했다. 반 친구들은 "너 왜 이렇게 얼굴이 번들거려?"라고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나치게 광이 놨었다. 그건 바로 식용유광. 온 반에게 큰 웃음을 주고야 깨달았다. 얼굴에 바르는 오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또 하루는 눈썹의 모양이 얼굴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말을 듣고선 엄마의 화장대를 뒤져 눈썹 칼을 찾았다. 더듬더듬 모난 부분만 다듬어 자르려고 하다가 눈썹 절반을 밀어버렸다. 한쪽만 절반인 것도 우스워서 양쪽을 맞춰서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아, 등교 못 하겠는데' 착잡함이 밀려왔다. 다행히 엄마 화장대에 눈썹 브로우가 보여서 열심히 그려본다. 다음날 나는 학교로 갔다. 반 친구들도 '쟤 뭔가 눈썹이 이상한데'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리 시간, 무섭고 차갑기로 소문난 지리 선생님이 내 얼굴을 빠아안히 바라본다. "너 화장했지?" 아니, 눈썹이 무슨 화장이란 말인가. 억울했다. 그리고 분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생긴 걸까. 나는 결국 수업시간에 통곡을 한다. 결국 선생님은 조용히 나를 아무도 없는 교무실로 부르셨다.


"왜 화장했어?"


"눈썹을....눈썹이... 실수로 잘라가지고.... 없어가지고...."


"응?"


"...제가 너무 못생겨서요..."


훌쩍거리고 있는 나를 유심히 본다. 그리고 선생님은 본인 특유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여 딱 한마디만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마디만. "내 눈썹을 봐" 겨우내 고개를 들어 선생님의 눈썹을 바라본다. 선생님의 눈썹은 앞에는 머리숱이 송송 거리며 날렸으나, 동공을 기점으로 그 이후부터는 눈썹이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선생님 앞에서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푸시시식. 어떻게든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다 보니 바람 빠진 소리가 더 거세졌다. 푸푸푸푸쉭. 선생님은 눈물범벅인 채로 입은 움찔거리며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는다. "나도 이렇지만 잘 지내잖아? 자, 이제 가봐" 평상시 프란체스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찬바람 휭휭 날리던 선생님의 쿨한 한마디가 온전히 나를 녹여 내린다. 그 뒤로 나는 당당하게 복도를 거닐었다. 눈썹이 양쪽 다 반인채로.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절친하게 지내던 5명의 여자친구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가 소리를 지르며 소식을 전했다. "야! 내가 과팅 잡아왔다!!" 우리는 같이 환호했다. '드디어 대학생활에 빛이 피는구나!'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팅은 4:4란다. 우리 중에 한 명이 빠져야 한다는 소식에 서로 눈치를 보았는데, 이상하게 그 무리 중 넷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치는 무엇보다도 나를 좌절하게 했고, 슬프게 했고, 주눅 들고 또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 무리를 빠져나간다. 그럼으로써 세상에서 빠져나간다.


도대체 겉으로 보이는 게 무엇이길래, 외모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나를 송두리째 잡아먹나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다가도 세상에 상처 입고, 회복했다가도 또 상처 입길 반복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금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다. "내 눈썹을 봐" 그래, 어쩌겠어. 내가 생긴걸 이렇게 생겼는걸.


알랭 드 보통도 말한다. "개인의 외모는 삶의 가장 비민주적인 부분에 속한다. 외모는 마치 복권과 같고, 여러분은 아마 당첨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에 당신은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으며, 사람들이 그렇게 생긴 건 그들 탓이나 공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 생긴 것뿐이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남들과 다르게 당신의 머리를 좋게 평가할 것이다. 못생긴 사람은 아름다움의 진가를 인정할 최적의 위치에 있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에게 호의를 보일지 고려할 때 이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외모는 어떻게 보면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하고. 그러니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외모를 가꾸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게 주어진 외모는 내가 어떻게 손쓸 수 없이 말 그대로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왜 저렇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왜 내 눈썹을 저렇게 자라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나를 스스로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주어진 그대로를 사랑해주고, 보이는 대로 가꾸며 살아가는 지금이 속 후련히 편할지도 모른다. 선생님의 한마디처럼 "내 눈썹을 봐" 있는 그대로 보길. 사랑하길. 아껴주길. 가꿔주길.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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