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그리고 9월 즈음을 좋아한다. 온 피부로 느껴지는 봄과 가을의 체온을 원래도 좋아했지만, 카페&서점을 운영하고 나서는 두배 이상으로 더더더 좋아한다. 일 년 중 난방을 꺼둘 수 있는 유일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두터운 패딩을 벗으며 '오늘따라 덥네'라고 말한다. 손님들의 외투도 패딩에서 코트로 바뀌었다. 늘 털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한 채 카페를 들어오는 손님의 모자도 캡 모자로 바뀌었다. 그래, 봄이 왔나 봐! 봄이!
매장음악을 봄스럽게 바꾸는 일도 카페 사장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일과지! 내겐 봄마다 무한 반복해서 듣는 음악이 있다. 바로 인디밴드 블루파프리카의 '봄처럼 내게 와'라는 음악인데, 가사마저 내게 잠자고 있던 봄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꺼내게 만든다.
"햇살이 따뜻해. 외투가 답답해. 이젠 장갑도 필요 없어. 바람이 달콤해. 기분이 상쾌해. 이제 봄이 오려나 봐. 바람 부는 날 함께 걸어볼까. 너를 처음 본 그 거리에서. 꽃이 피는 날 소풍을 갈까. 네가 좋아하는 공원에서. 봄처럼 내게 와줘. 꿈처럼 내게로 와. 봄처럼 내게 와줘, 꿈처럼 내게로"
바람은 아직 쌀쌀하지만 햇볕은 따스하다. 봄이 오려는 듯 바깥 온도는 조금씩, 조금씩 올라 이내 마음의 온도까지 올렸나 보다. 손님들마다 봄의 오는 설렘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테이블마다 다정스러운 속살거림이 오간다.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 봄의 내음으로 가득 찬 카페는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이라 반갑고 또 눈물 난다. 그 따스함을 오롯이 즐기고 있는데, 한 중학생 손님이 말을 건다.
"사장님! 사장님이 이 책 쓰셨다고요?"
음료를 주문하는 카운터 옆에 대놓고 떡하니 놓여있는 내 책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와 형형색색 때수건을 바라본다.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작가님이다!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무슨 내용이 적혀있어요?"
"다음 책은 언제 나와요?"
"다음 책에는 무슨 내용을 적을 거예요?"
봄의 종달새의 지저귐이 이런 걸까.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는 '쟤가 왜 저렇게 질문을 할까?'하고 가만히 지켜본다. 잘생긴 훈남 중딩의 속사포 질문에 나는 차근차근 대답해본다. 작가라고 지칭하기는 민망하고, 책은 카페에서의 일상을 담았으며 다음 책은 계획이 없다고. 그러자 이전의 천진난만함과 열정은 어디 가고 고개를 푸욱 숙이는 학생의 모습이 보인다. 왜 그러냐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다음 책이 안 나온다고 그러니 슬퍼서요"
아직 내 첫 책도 다 안 읽었으면서 다음 책을 기대하는 독자라니! 근데 뭘까, 이 기분 좋음은! 괜히 가슴이 근질근질하다. 마음이 몽실몽실, 말랑말랑하다. 종달새의 지저귐이 내 귀로, 마음으로 따스함을 옮겨놓는다.
"책은 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은 꾸준히 쓰고 있어요!"
내 답변에 중학생 손님은 고개를 팍 든다.
"그럼 제 이야기도 써주세요! 다음 책에 제 이야기도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 카페의 테이블마다 '풋'하는 소리가 난다. 생크림빵이 풋! 하고 터지듯 그런 빵 터진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나 또한 물개 박수를 치며 웃는다. 눈이 안보일정도로 웃어버린다. 빵! 하고! 중학생 손님은 진지하게, 자신이 등장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한다. 그래, 대한민국은 삼 세 번이지! '3'은 정말로 진실되고 강한 완벽한 숫자다. 어떠한 주장에 세 개의 근거와 세 개의 예시면 납득할만하게 되고,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 간절함과 진심이 된다. 나는 꼬옥 그러겠노라고 약속한다. 이내 기분이 좋아진 중학생 손님은 우리 카페 방명록에 '2022년 3월 1일, xxx 왔다감!'라고 메모를 남기고 간다. 나가면서도 "이거 안 지웠으면 좋겠어요 꼭이요!"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간다. 또 한 번 카페에 빵이 터져나간다. 빵! 빵!
그리고 오늘 나는 실행에 옮긴다. 늘씬하고 키가 크고, 머리스타일도 단정하고, 얼굴도 너무 잘생긴 훈남 중학생 손님과의 일화를 이렇게 글로 써본다. 그가 남긴 방명록은 아직도 카페 대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랑스러운 온기는 아직도 이렇게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글로 남아 오래도록 간직할 추억이 될 테다. 내 인생이라는 책의 한 페이지에 들어가, 책 속에 자리하게 될 테다.
훈남 손님! 개학하고 나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해요? 영어 원서도 읽겠다는 약속 꼭 지키고요! 전 이렇게 약속 지켰죠? 나중에, 정말 혹시나 나중에 종이책이 나오게 된다면 제일 먼저 알려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