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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04. 2022

1. 아들과 함께 카페에서 일합니다

진득한 마음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

간호사의 두 손바닥이 내 다리 밑을 사정없이 헤칠 것이라는 것을

한 마리의 발가벗은 짐승이 되어 울부짖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어코 나의 밑바닥의 본성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아이의 침에 반쯤 녹아 테이블에 설탕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있는 사탕

그 진득함을 내 입에 집어넣는 순간

그저 다 잊고 말았어     


*


뱃가죽

     

이상한 일이야

배에 번개가 내리쳤어

그것도 57번이나     

번개가 내리친 자리는

붉은 상처가 남았다

이내 희어졌다가

결국 무너져 내렸지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 생명의 역사서를 바라보는 기분이야

그것도 57쪽을



*


나는 임신 과정에서 몸무게 30kg가 쪘다. 갖고 있던 셔츠, 바지는 물론이거니와 양말, 속옷, 심지어 신발마저도 맞지 않아서 새로 구매했어야 했다. 내 몸무게를 지탱하던 다리는 매일매일 저렸고, 밤에 잘 때는 근육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쥐의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가슴의 젖꼭지는 젖이 나올 준비를 하느라 미세한 구멍에서 하얀 찌꺼기들이 끼어있었고, 가슴은 까매지고 있었다. 목욕탕에 가면 보던 '엄마'의 가슴이었다. 출산을 경험해본 자의 가슴이 되어가고 있었다.


출산 때는 위아래로 발가벗겨져 간호사가 내 음모를 제모하는 동안 기다려야 했고, 현장실습을 나온 간호사 세네 명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내 아래를 바라보는 것도 견뎌야 했다. '출산은 신성한 과정이야. 신성한 과정이야.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신성한. 신성' 그렇게 되뇌다 이내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양수는 제시간에 터지지 못했고, 능숙한 간호사는 두 손바닥을 합장시켜 내 밑을 퍽, 퍽 찔렀다. 새벽부터 지속되는 통증을 견디고 또 견디어내 마침내 출산에 이르렀다.


출산 후 아이가 아름답다기보다는,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이 경이로웠다. 

어떻게 내 안에서 아이가 살고 성장하고 또 태어날 수 있지? 어떻게 내 배에서 애기가 튀어나오지? 어떻게?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다.


첫 양육은 고통이 9할, 기쁨이 1할이었다. 신생아에게는 낮과 밤의 기준이 없다.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3시간마다 울었다. 호두 알보다 작은 위가 비워지고 채워지는 과정을 3시간마다 반복했다. 젖이 도는 가슴은 '이러다 터지는 거 아니야?' 싶을 정도로 땡땡하게 불어있었고, 이내 주르륵 흐르는 모유를 막기 위해 가슴에도 생리대를 찼다. 출산 이후 30여 일이 넘게 밑에서 피가 나왔다.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나의 가슴에 모유 패치도, 아래의 생리대도 갈았다. 그때 느꼈다. 나 또한 새로운 탄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임을.


나는 생각보다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나의 먹고사는 생계, 일을 위해 아이를 방치했다. 엄마가 일할 동안 아이는 휴대폰을 보게 했고, 저녁밥을 차리는 동안 티브이를 보게 했다. 그런 아이가 안타까워서, 내 몸이 조금 더 편해보고자 14개월에 어린이집에 보냈다. 육신과 정신이 너무나 지치고 피로하는 날, 예민하기 그지없는 날이면 아이에게 고함을 치고 등짝을 때렸다. "왜 말을 안 들어!"라고 쉴 새 없이 소리쳤다. 이런 나의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이런 '나'를 나는 전에도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취해도 본 적 없던 나라는 인간의 밑바닥, 본성을 이제야 발견한다. 사랑해마지않은 아이에게 간혹 가다 비치는 나의 못된 모습이 죄책감을 안긴다. 엄마라고 불린 이상 죄책감은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아이가 아파도, 아이가 슬퍼해도, 아이가 우울해하여도 모든 게 책임인 것 같은 자책은 엄마의 필수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제 제법 말을 하는 우리 아이. 네 살배기 아이는 "엄마 카페 조아!"라고 말한다. 엄마의 일터에서 함께 수다를 떨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이요(우유를 이렇게 발음한다)를 한 잔 하는 것이 하루의 즐거움인 우리 아이. 너와 함께하는 오늘 하루도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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