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을 운영한 지 4년 차, 겨우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버팀의 시간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걸 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카페를 마감하고 바닥을 닦고 있노라면 그날 방문한 손님들의 흔적이 느껴진다. 눈앞에 보이는 이 긴 머리카락의 주인공을 떠올려본다. 바닐라라떼를 좋아하는 그 친구. 매일 따뜻한 커피만 마시다가 오늘따라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시켰다. 그녀의 이 변화에 계절이 변화했음을 실감한다. 밖에서 바라오는 바람에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저 빨대 껍질을 보라. 자유분방한 저 모습에서 오늘 놀러 온 그 손님이 떠오른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에너지를 몰고 와 폭발하듯 발산시키고 나가곤 한다. 손님이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유쾌한 에너지는 이 공간을 넘실거린다.
마지막으로 카운터를 청소하는 시간인데, 매출장부 정리도 이때 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오늘은 얼마를 벌었나 체크하는 일은, 카페 창업 4년 차지만 여전히 설렌다. 내 눈으로 오늘 몇 명의 손님이 왔는지 헤아려 놓고, 두 손을 펼칠 필요도 없이 몇 잔의 커피를 팔았는지 명백히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렌다. 특히나 오늘은 더 기대할만하다. 오늘 거액의 결제 건이 있었다. 무려 1건에 5만 원!
우리 공간은 이제 '커피'보다 '책'이 중점인 공간이 되었다.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 모습이다. 커피를 한 잔이라도 더 팔 기 위한 방법이 독서모임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공간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의 모습보다 서점의 모습에 더 가깝게 변모하기도 했다.
여하튼 최근에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20권 완독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모임에는 중학생 두 명이 함께하고 있다. 물론 손님인 '엄마'의 추천이기도 했다. 손님은 자신의 딸에게 '책'의 즐거움, 특히 장편을 읽었을 때 오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딸을 독서모임에 추천했지만, 진정한 즐거움이란 함께 읽을 때 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래서 딸의 친구까지도 함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이제 두 딸은 토지 완독 모임의 출석률이 매우 높은 고정멤버다. 엄마는 거기서 더 나아가, 오늘 음료값으로 5만 원을 선결제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와서 음료를 마시고, 책도 읽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리고 그 두 친구는 오늘 초코라떼와 밀크티를 시켜마신다. 호로로로록! 호로로록!
손님의 모습에서 조금 먼 미래의 내 모습을 고민해보게 된다. '나는 저런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강제하는 것이 아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모습, 엄마가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모습,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 모습, 아이들마저도 행복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 또한 손님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손님에게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배운다.
그러고 보니 나는 손님들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구나. 늘 차분하고 따뜻한 말을 하는 손님으로부터 따뜻한 말이 주는 위력을 배웠고, 푸릇한 사랑을 꿈꾸는 청년으로부터 사랑을 향한 열정을 배웠고, 육아에 지쳐 우울감을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향한 손님의 눈으로부터 사랑을 담은 눈빛을 깨우쳤다. 친구 없이 외로운 내게 나이를 떠나, 세대를 떠나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한잔의 커피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나밖에 몰랐던 이기적인 나였지만, 이제는 나를 넘어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텀블러를 내미는 손님들, 재활용 쇼핑백과 캐리어를 깨끗하게 모아 와 내게 건네는 손님들을 통해서 지구마저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모든 손님들은 저마다 각자의 힘이 있다. 모든 손님들은 저마다 각자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네들의 모습에 감동하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이내 마음을 느끼게 된다. 손님을 사랑하는 서점&카페 사장이라니! 웃기면서도 이내 인정하고야 만다. 이 감정은 정말이지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인 인류애자 사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