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싸하게 매운 생마늘을 쌈장에 찍어먹고 있노라면 고통과 더불어 시원하고도 개운한 감정도 더불어 일어난다. 오늘도 나는 10시간이 넘는 근무시간을 잘 지켜냈고, 그 보답으로 스스로에게 맥주와 그리고 생마늘을 하사했다. 퇴근 후 캔맥주는 하루를 오롯이 잘 버텨낸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포상과 같다. 다만 그날의 매출에 따라 안주는 다양해질 수 있는데, 오늘 내게 주어진 것은 마늘과 쌈장이다. 생마늘이 주는 혀의 통증은 ‘오늘 왜 그것밖에 못 벌었어?’라는 채찍질과, 매우면서 속 시원한 그런 개운한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수고했어’라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묻어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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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무엇이기에 이토록 나를 힘들게 하는가. 무척이나 작아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제에, 자기보다 거대한 나를 이렇게나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 다짐한다. 울지 말자,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주변에 힘들다고 징징거리지 말자.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마음의 울분을 쌓고, 또 쌓아 올린 이 거대한 고통의 벽은 어떻게 허물을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틀어막은 감정의 울분은 이도 저도 못한 채 내 속에서 아우성이다. 울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하루가 고되고 힘들다. 돈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도, 지금 당장 내게 주어진 현실은 혹독하다.
3월 21일 월요일, 54,500원
3월 22일 화요일, 34,500원
3월 23일 수요일, 46,500원
3월 24일 목요일, 44,500원
순수히 커피를 판 돈이라면 그나마,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했을 테다. 하지만 이 매출에는 기본 1만 원이 넘는 책을 판매한 매출도 포함되어있으며, 게다가 재료값을 뺀 순수익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 ‘매출’이다. 심지어 월세, 전기세, 각종 공과금의 비용이 감안되어있지 않은 그저 날것 그대로의 매출이다. 나의 하루는 어디로 갔는가. 카페에 얽매어있는 나의 하루는, 나의 삶은, 어디로 향해가는가. 우리 카페&서점의 오픈 시간은 10시지만, 그전에 9시 30분부터 꼭 문을 연다. 그리고 9시 40분쯤 방문한 첫 손님은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오랜만이에요! 요새 장사 잘되죠? 다른 곳은 힘들다고 하던데, 여기는 인스타그램 보니까 잘하고 있더라고요” 별거 아닌, 그저 안부차 건넨 한 마디의 말은 창이 되어 나를 찌른다. 그리고 저녁 9시쯤 방문한 손님은 “우리 동네에 이런 공간이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는 진심 어린 말을 건넨다. 분명, 따스한 위로와 지지임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묵직하다.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하는데 매출은 4만 원 언저리일 때. 노력한 만큼의 금전적 보상, 아니 정신적 보람마저도 느끼지 못했을 때 오는 공허감은 굉장히 크다. ‘내가 뭐 하러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매 초마다 나를 괴롭힌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한가한 내 몸을 비난한다. 지금은 모두가 힘든 시기인만큼 조금만 버텨보자, 그래 기다려보자, 인내해보자라고 마음먹은 게 벌써 2년이 지났다. 지금 나의 실패는 모두 코로나의 탓이라는 온갖 비난을 다했다가, 경영능력 부족이라고 스스로를 탓했다가, 이어서 가게의 입지, 그리고 이내 손님마저 탓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가게가 꼭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며! 근데 왜 커피 한 잔 안 마셔주는 거야?’
‘책을 추천받아놓고 왜 인터넷으로 사는 거지?’
‘4년간 함께한 ‘정’이 있는데 왜 코로나를 핑계로 안 들르는 거지?”
그들을 비난함으로써 내 마음이 편안하고자, 비난의 화살을 애꿎은 그네들에게 돌린다. 하지만 이 모난 마음은 결국 돌고 돌아 내게로 돌아온다. 비겁자! 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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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랜 시간 얼굴을 봐온 손님이라도 ‘친구’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저 ‘손님’에서 한 단계 격상한 ‘단골손님’이 될 뿐인 것을 깨닫는다. 오늘이 되어서야 나는 나의 모순적 태도를 깨닫는다. 내가 친구라고 일컫는 손님들이 우리 카페&서점에 들러 커피 한 잔, 책 한 권 사가기를 바라면서, 그러니까 이내 그네들의 ‘돈’을 바라면서도 ‘친구’의 관계를 요구했던 것 자체가 나의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회사에서 공사를 구분하듯, 자영업의 세계에서 장사를 잘하려면 손님과의 공사를 구분해야 했다. 무작정 덤이나 정을 퍼주는 것이 아닌, 그 적정 선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손익계산이 참 느렸던 것이다. 자영업자로 성공할 수 있는 경영적 마인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무작정 덤이나 정을 퍼주는 것이, 그들과의 신뢰와 우정을 형성하는 과정이 ‘돈’보다 중요해진 시점에서, 나는 이미 자영업자로 글렀던 것이다. 내가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카페&서점에 방문해주는 손님들과 ‘정’을 쌓으려는 그런 마음의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정에 주려 있는 인간인 것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보다 풍만한 감정적인 보상, 그러니까 우정이나 친구와 같은 정신적 풍요를 기다렸지만,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내겐 그런 풍만하고도 충족스러운 감정도, 심지어 돈마저도 없으니 나는 지금 격하게 외로운 것이다.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돈으로도 보상받지 못하는 이 감정을 갈무리하는 게 내겐 버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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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국밥집, 파스타집, 카페, 학원 등 수백, 수천 가지의 업종의 사장님들의 글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고통과 울분, 우울함과 외로움, 절망과 고뇌로 가득 차 있는 짧고 긴 글들이 늘 가득 들어차 있다. 좋은 말은 하나 없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그득한 이 커뮤니티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자 우리네의 삶이다. 그렇기에 더 꿋꿋이 그네들의 하소연을 읽고, 듣고, 공감하려고 한다. 그것만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이기에. 서로를 위로하는 하나의 방법이기에. 하루를 버텨내는 힘이 되기에. 내리는 비를 꼿꼿이 같이 맞아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함께 외로움을 견뎌내고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