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Mar 16. 2022

39. 자영업자에게 자가진단키트란

단골손님들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단골손님들을 따라오던 손님들도 격리에 들어갔고, 손님이 될 '뻔'했던 사람들도 격리에 들어갔다. 날씨는 이리도 화창한데, 거리는 전에 없이 황량하다. 거리마다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매장 앞에 지천으로 널린 밭을 구경하러 간다. 매실나무에서 매화들이 예쁘게 그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러나 거리에는 그런 매화를 바라봐줄 사람이 없다. 텅 비어있는 식당에서 TV나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식당 사장님, 카페 사장님을 바라본다. 나와 같은 동지들을 그저 바라본다.


자영업자는 손님이 없는 것도 문제고, 손님을 만나는 것도 문제다. 손님이 없는 날이면 기운이 나질 않고, 손님을 만나는 날이면 코로나에 전염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불안에 떤다. 내 한 몸 코로나 걸리는 것이 무엇이 문제랴. 다만 매장에 방문해준 손님에게 코로나를 다시 전염시키는 사태가 발생할까,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될까 그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격리를 위해 가게의 문을 걸어 잠가야 하는 상황이 절망스럽다는 것뿐이다. 


단골손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 제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어요." 나는 미리 쟁여둔 자가진단키트를 꺼내 익숙하게 코에 찌른다. 처음 자가진단키트를 살 때, 거금 6천 원이 아까워 손을 떨었다. 비싼 키트를 거저 날릴까 봐 설명서를 읽고 또 읽었더랬다. 이젠 익숙하게 더 깊게 면봉을 찔러 넣어 휙휙 코 안을 휘젓는다. 눈물이 질끔해도, 면봉에 주홍빛 피가 묻어 나와도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렇게 한 줄 '음성'이 나왔을 땐 안도감을 느낀다. 이 안도감은 매일마다 새롭고, 또 감사하다. 이렇게 하루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손님의 연락을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많다. 코로나 자가진단키트 앞에 서면 두려운 순간이 많다. 검사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닌, 양성이 나올 때 닥쳐올 파도에 겁에 질린다. 가게의 문을 여는 것은 생계를 위한 하루의 출발이기에, 가게를 하루 온종일 지키고 있는 것은 하루의 밥벌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에.


주변에 생각보다 자가진단키트를 안 하시는 분들이 많음을 알고 있다. 목이 따끔 하거나,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도 '그저 전날 무리한 것 때문이야', '곧 나을 것 같은 경미한 증상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머리가 어지럽거나 열이 조금 나도 '심한 열은 아니야'라며 스스로의 체감온도를 신뢰한다. 코로나로 가리키는 증상들이 나와도, 코로나는 아닌 감기나 독감일 것이라고, 그것이 분명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인다. 자가진단키트는 하지 않는다. 내가 아픈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자가진단 키트가 비싸서 그런 게 아니다. 그저 그 키트가 보여줄 두줄이. 그 단순한 빨간 두줄이 의미하는 것이 청천벽력이기에. 스스로의 눈을 가린다. '난 괜찮아'


그런데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하려는 자는 알아야 한다. 빨간색 두 줄, 고작 그 두줄이 사람의 목구멍을 조른다는 것을. 한 사람의 생계를, 안정을, 가족의 안녕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위태롭게 서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그들의 아픔을 조금쯤은 이해해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