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는가? 나는 간사하게도 겨울에는 여름이, 여름에는 겨울을 좋아한다. 오늘처럼 푹푹 찌는 여름에는 하늘 위를 폴폴 자유롭게 노니는 눈을 보고 싶다. 겨울철 눈이 주는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내가 사는 이곳, 진주에서는 겨울에도 눈이 안 내린다는 함정이 있지만!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여름이 좋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참 좋다. 마냥 좋다.
여름의 청보리밭이 널려있는 곳을 돌아보다 하늘을 올려본다. 어쩌면 그렇게 하늘이 넓은지! 큰 대지에 나 하나 서있고, 그 속에 조그맣고 작은 나를 여름은 감싸 안아준다. 도로를 운전하다 커브길을 돌 때면, 하늘을 향해 질주하는 기분이 든다. 하늘 위를 운전하는 것은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들곤 한다. 하늘에서 떨어질까 두렵고, 구름 위를 달리는 기분은 설레기까지 하다. 해가 느지막이 떨어지는 그 시간. 남은 햇볕을 그러모아 프리즘을 통해 반사하듯, 저녁 무렵 하늘은 다양한 색채감을 선사한다. 때론 보랏빛, 때론 주홍빛으로. 내게 하늘을 조금 더 올려다보게 한다. 하늘을 조금 더 길게 바라보게 한다. 하늘을 조금 더 사랑하게 한다.
여름에는 다들 문을 열고 생활을 한다. 조그마한 바람 한 줌이 창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와 가끔 볼을 간질인다. 여름에는 색채뿐만 아니라 소리도 다양하다. 다양한 가정의 소리가 들린다. 퇴근하고 다들 집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소리, 우당탕탕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자욱, 티격태격하는 가족 간의 대화, 그리고 7시쯔음해서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소리. 우리네 삶의 소리.
저녁의 소리가 들리는 여름이다. 여름이 왔다.
봄을 그리는데 여름이 온 거예요
나는 놀라서 파란색 물감을 부었답니다
연분홍빛에 스며드는 푸르름은
청량감을 더해주더군요
계절을 붙잡고 있던 나 또한
바뀌어가는 모든 계절의 색을 받아
유려하게 빛나는 사람일 텐데
-peter zimmermann의 작품에서
책, <순간을 대하는 태도(강준서)> 속에서-
by 강준서
순간을 대하는 태도
by 강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