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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ul 20. 2022

가족끼리 함께 TV를 본다는 것

나는 막장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리고 권선징악이 뚜렷할수록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막장'이라는 말은 갈 때까지 갔다는 말이다. 즉, 주인공이 저렇게까지 착해빠질 수가 있다니! 세상의 모든 운이 주인공에게 쏟아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니! 매 순간 놀라게 되는 것이다. 막장드라마는 또한 '드라마'이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많다. 웃기고, 슬프고, 설레고, 두렵고, 긴장되는 수많은 감정을 마주한다. 때론 두 가지의 감정을 한 번에 보여주기도 한다. 웃프게.


우리 엄마는 아침, 저녁 드라마를 꼬옥 챙겨보곤 했다. 리모컨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엄마에게 있기에, 우리는 그런 엄마를 따라 드라마를 본다. 등장인물이 가슴에 손을 얹고 "이 안에 너 있다"라는 대사를 뱉으면, 나와 동생은 괜히 느끼하다며 '으윽'소리를 내면서도 두근두근 설레 한다. 주인공이 뽀뽀하는 장면에서는 괜히 옆자리에 있는 엄마 아빠의 존재감이 더 느껴져 버린다. 가슴이 지릿지릿 애리는 장면이 나오면, 안 우는 척 재빨리 눈가를 쓱 닦아낸다. 그런데 알 수 있다. 조용하고도 촉촉해지는 그 분위기. 그리고 들리는 '스윽'하는 소리. '아, 아빠도 몰래 눈물을 닦았구나!'


그러다 보니 문득 알게 되었다. 가족끼리 함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서로 간 감정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방법이었구나. 부모님이란 늘 가까우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존재다. 그리고 부모란 가장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다가도 영원한 타자에 불과하다. 부모의 마음은 내가 부모가 되어서도 다 헤아리기 어렵고, 자식의 마음은 부모의 마음과 늘 같지 않다. 영원한 타자로서 존재하는 부모를 이해하는 순간이, 내게는 드라마를 볼 때였다.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바라보며 부모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깨닫는다. 인간대 인간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우리 집의 풍경을 되돌아본다. TV를 켜놓고 각자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늘 멀티로 살아간다. 귀로는 텔레비전을 듣고, 손으로는 휴대폰의 문자를 보내고, 눈은 텔레비전과 휴대폰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바쁜 눈은 가족들의 감정을 돌아볼 시간이 없다. 휴대폰 4대보다는 TV 1대의 유용성이 더 컸구나.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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