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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19. 2022

3. 나 혼자 잘난 맛, 이젠 그것을 아님을 아는 순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과 함께하는 티키타카

한 손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우리 딸이 자기처럼 커준다면 더는 바랄 게 없는 것 같아" 태어나서 이런 말은 또 처음이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 같은 딸이라니! 엄마가 '너도 너 같은 딸을 키워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말은 들어봤는데 말이지. 당황해하는 나를 두고 손님은 덧붙인다. "당신의 생활력 강한 모습이 참 멋져요. '딸이 앞으로 뭐해먹고살까' '가족을 꾸리고 자기네의 삶을 잘 살아갈까' 부모는 그게 늘 걱정이잖아요. 하지만 당신을 보면 그렇지 않거든. 부족함 속에서도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고, 하루를 채워가는 모습이 참 든든해요. 우리 딸도 당신처럼 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앞가림을 잘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속에는 딸을 향한 사랑과 염려, 부모로서의 막중한 책임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나를 좋게 바라봐주는 그녀의 애정 또한.


그녀의 말은 몇 날 며칠, 늘 내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말을 곱씹고 또 갈기갈기 헤치는 지경에까지 이르었다. 그리고 이내 나는 스스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내가 무척 대견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내 몸으로 겪는 시행착오를 더 중요하시는 점도 완전 멋지군. 억척같은 생활력으로 아득바득 하루를 살아내는 나 자신이. 서서히 그러나 점차 성장해나가는 내 모습이 참 애틋하면서 또 사랑스럽기도 해. 무엇보다도 그리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도 일말의 주눅듬 없이 이렇게 힘차게 살아나가는 게 참 끝내주네!"


그리고 얼마 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손님들과 책방에서 독서모임을 했다. 책에 대한 소감, 인상 깊었던 구절 등등을 나눈 후 마지막으로 서로가 책을 읽고 떠올렸던 질문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한 손님이 내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인 김지수씨가 스승인 이어령 선생님을 인터뷰한 책인데요. 여러분도 저마다 인생의 스승이 있나요? 마지막을 인터뷰하고 싶은 스승님이 있으면 이야기해주세요"


스승에 대한 질문은 생각보다 여러 번 받았었다. '기억에 남는 스승님이 있나요?' '인생의 전환점이 된 스승님이 있나요?' '아직도 연락하고 있는 스승님이 있나요?' 등등.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선생님이 없다고 했다. 유치원 때는 선생님께 잘 보이려고 엄마의 결혼반지를 선물로 주었고, 학창 시절엔 촌지문화 때문에 소외된 순간이 떠올랐다. 더커서는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거나, 외모가 출중하거나, 성격이 무진장 좋은 아이들이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뭐든지 애매하기만 한 나에게는 진정한 스승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스승을 만날 기회도 확실히 적었고 말이다. 


그런데 질문에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으니, 이상하게 부모님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한없이 커 보이고 멋지고 당당했던 부모님. 부모님의 학력을 뛰어넘고, 부모님의 되돌릴 수없던 청춘을 가진 나에게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이 멋져 보이지 않았다. 모난 부분만 도드라져 보였다. '왜 부모님은 저렇게 싸우듯 대화를 하는 걸까' '스마트폰도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잘 써먹을 수 있는데' '인터넷 최저가 찾는 게 뭐가 어렵다고 매번 시장에서 비싸게 사는 걸까' '은퇴 후 조금 쉬면 될 텐데 왜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할까' 


그러다 이내 인정하게 되고야 말았다. 부모님의 어투, 대화, 행동 그 모든 것은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는 '억척스러운 생명력'이 묻어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님이 칭찬했던 내 모습에도 이런 생명력이 묻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스스로의 열정이나 노력이 아니었다. 나를 만들어내고 일궈낸 건 스스로가 아닌, 나의 부모님이었다. 바보처럼 머리보다는 몸으로 경험해보는 게 중요한 엄마의 삶의 태도. 개미처럼 일만 해대는 아빠의 근면성실함. 삶을 정직하게 직시하고 하루를 오롯이 살아내는 부모님의 여정. 나는 그 모든 것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다.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책 속의 문장을 그저 활자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 순간을 목도한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건 부모님 뿐만 아니라 손님들도 있었구나. 늘 차분하고 따뜻한 말을 하는 손님으로부터 따뜻한 말이 주는 위력을 배웠고, 푸릇한 사랑을 꿈꾸는 청년으로부터 사랑을 향한 열정을 배웠고, 육아에 지쳐 우울감을 호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향한 손님의 눈으로부터 사랑을 담은 눈빛을 깨우쳤다. 친구 없이 외로운 내게 나이를 떠나, 세대를 떠나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한잔의 커피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다. 나밖에 몰랐던 이기적인 나였지만, 이제는 나를 넘어 이웃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텀블러를 내미는 손님들, 재활용 쇼핑백과 캐리어를 깨끗하게 모아 와 내게 건네는 손님들을 통해서 지구마저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두 발을 지탱하고 서있는 저를 바라본다. 혼자서 서있는 것 같지만 실은 여러 사람의 힘이 있기에 서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이룩한 건 내가 아닌 모두 그네들 덕분이요. 내일을 살아가는 이유도 다 그네들 때문이요. 매사에 감사하게 되는 이유도 모두 다 그네들의 사랑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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