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살아간다>책과 함께하는 티키타카
나이는 네 살, 태어난지는 3년도 채 안된 아이가 하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밥 맛없어"
어이가 없어서 빤히 쳐다만 보는 나를 두고 남편인지 남의 편인지는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집에 가면 밥 한 그릇 뚝딱하던데. 할머니가 해준 밥이 맛있긴 맛있지?" "응!"
뭐가 좋은지 헤실거리면서 대화하는 저 둘을 보니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다.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내게는 큰 고민거리다. 아들이 벌써 2주 가까이 저녁밥을 먹지 않는다. 점심과 저녁 사이 간식을 주지 않기도 했다. 허기가 최고의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 아이를 저녁 먹기 전까지 놀이터에서 빡세게 굴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2주째 저녁밥을 두 수저 이상 들지 않는다. 고민 끝에 아이를 시어머님께 보내기로 했다. 할 일이 있어 남은 나를 빼고 가는지라, 아들과 남편은 즐겁게 짐을 싼다. 자그마한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서는 아들의 걸음소리에서는 수저통에 담긴 젓가락이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 젓가락마저 신나게 떠나는 것만 같아서 어이가 없다. 오후 6시에 간 아들과 남의 편은 9시가 다되어 돌아왔다. 올챙이 배를 투둑 투둑 두들기며 "북소리!"라고 외치는 아들, 그리고 "우리 아들, 오늘 두 그릇이나 먹었어!"라고 응답하는 남(의)편의 말에 기도 안찬다.
오늘은 친정엄마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진주까지 오려면, 세 시간 거리를 달려와야 하는데도 딸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핑계로 온다. 그리고 늘 그랬듯 엄마는 그동안 못해준 걸 해주려는 듯 두 손을 걷어붙인다. 집을 쓸고 닦고, 창틀도 뽀득뽀득 윤이 나게 닦는다. "제발 안 해도 된다니까!"라고 소리쳐봐도 소용이 없다. "차라리 집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자!"라고 고함을 지르면 아빠는 차 트렁크에서 재어온 갈비와 파김치를 꺼낸다. 그네들의 마음씀이 늘 이렇다. 사랑이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된다. 그렇기에 딸은 늘 소리를 지른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고마워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갈비와 파김치에 저녁 식사를 한다. 아들이 허겁지겁 입에 밥을 욱여넣는다. 나중에 수저와 포크 쓸 시간도 없는지 맨 손으로 밥을 움켜쥐어 입에 넣는다. 잘라놓은 갈비도 그냥 쓸어 넣는다. "아가야. 밥을 좀 천천히 묵거라. 엄마가 밥을 안 주더나" 내가 정말 억울해 죽겠다. 젓가락을 탁 하고 내려놓는 나에게 엄마가 걱정스레 말한다. "딸, 파김치 있으면 세공기도 먹더니 왜 두 공기만 먹어" "몰라!!!"
엄마 앞에 서면 나는 여전히 어린 아이이고 누군가의 딸일 수밖에 없다. 엄마 앞에서 그동안의 남(의)편의 만행, 아들의 쓸데없는 솔직함을 고백한다. 내 심정을 알아달라고 토로한다. 엄마는 딸의 이런 태도에 철없다고 말하지도 않고, 비웃지도 않는다. 담담히 들어주고 엄마만의 해석을 내게 건네준다.
"아들과 남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가족이 행복하다는 반증이야. 네가 가족에게 늘 애정을 주니까 밥을 먹지 않아도 이미 배부른 거지. 아이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아니? 밖에 나가면 밥을 잘 먹어야 해. 그게 생존의 원리거든. 그래야 예쁨 받고 사랑받거든. '아이가 참 밥을 복스럽게 잘 먹네' '아이가 참 잘 먹네'라고 말이야. 그런데 집에서는 밥을 먹지 않아도 이미 사랑과 애정을 듬뿍 주잖아. 안 그래? 그리고 조금만 기다려봐. 모든 것은 시기일 뿐" 묘하게 설득이 가는 엄마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몇 번 아이가 더 저녁을 넘긴 적이 있었지만 그것도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한 시기였나 보다. 이제는 김만 줘도 밥을 꿀떡꿀떡 잘 먹는다. 정말, 엄마 말이 맞구나. 엄마의 말에는 경험과 연륜, 그리고 무게가 있다.
열대 폭풍이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면 구아레아 같은 나무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지만 그래도 바람이 너무 강하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나무는 가로로 누운 상태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구아레아는 어느새 쓰러진 몸통에서 새로운 싹을 틔어 올린 후 자기가 품고 있던 식량과 수분을 공급해준다. 이 새싹이자 복제된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홀로서기 준비를 갖출 때까지. 내게 엄마는 이 구아레아 나무와 같다. 흔들리며 버티면서도 살아가는 엄마로부터 삶의 태도를 배운다. 나 또한 외풍에 흔들리며 꺾이는 순간에도 엄마가 건네 준 삶에 대한 확고한 직시와 의지, 그리고 지혜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까?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