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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26. 2022

1. 백정, 그 슬픈 존재에 대하여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

오늘은 진주에서도 정말 의미가 있는 ‘백정’이란 직업과 신분을 다룬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라는 책을 추천해드리겠습니다. 백정은 소나, 개, 돼지 같은 가축을 도축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이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라는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 백정의 의미를 넘어서 정말 그 당시에는 ‘백정’이라는 직업과 신분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책입니다.


단편적인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옛날에 백정들의 이름 스타일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백정들의 이름에는 짐승이나 돌, 금, 속, 똥, 순서 같은 뜻을 지닌 글자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걸이, 걸걸이, 차걸이, 걸금, 똥이, 시개, 도야지, 소근개, 마당개, 개조지, 개질동 같은 이름들이에요. 이름에서 차별이 묻어있죠. 이름부터 시작된 차별, 일상에서의 삶은 어땠을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책에는 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백정은 혼인날에도 말이나 가마를 탈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어떠한 치장도 할 수 없었다. 한 백정이 혼인날 관복을 입고 일산을 쓴 적이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들고일어나 관복을 빌려준 사람을 두들겨 패고 백정의 집은 허물어뜨렸다. 죽어서도 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백정은 따로 상여를 쓸 수도 없었고 가족묘도 금지되었다. 양민 가까이 묻히거나 양민 가까이 묻혀서도 안되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하지만 이 말도 백정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백정이랑 같은 예배들 드린다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래서 예배도 나눠서 다른 장소에서 진행했습니다. 결국 이런 오랜 차별이 '형평운동'을 만들어냈습니다. 1923년에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운동이 진주에서 처음 일어났습니다.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뜨거운 꿈을 안은 백정들이 함께 모여 ‘형평사’라는 단체를 만든 거죠. 백정과 합동예배를 시작한 것도 진주교회가 처음이었죠. 이 형평운동에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이 형평사 단체의 문은 비단 백정에게만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조선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었죠. 가장 불평등한 대우를 받던 이들이 가장 평등하게, 안에서만 아니라 밖을 향해서도 똑같이 문을 열어둔 거예요.  백정들은 다른 계급을 패배시키고자 형평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혁명 대결이나 투쟁도 원하지 않았고, 대대로 겪어온 그 끔찍한 고통조차 다른 계급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 고통을 ‘자신들의 해방’으로 해소하고자 하였습니다. 백정 스스로 해방되는 것, 백정 스스로 인간으로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만을 바란 것이죠.     


마지막으로 책 속 한 문장을 소개해드리며, 마무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다른 것을 보는 시선은 흔히 두 가지다. 다르니 다르다고 보거나, 달라서 이상하게 보거나. 다른 점을 받아들여 인정하거나, 다르니까 이상하다며 혐오하거나. 백정을 보는 시선은 후자에 가까웠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며, 오히려 다양함을 이해하고 성숙해질 수 있는 축복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할 때 다름을 향한 차별이 생기고, 천대와 억압, 멸시와 냉대도 자연스럽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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