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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26. 2022

2. 엄마도 자아는 있다.

<자아, 예술가, 엄마>

오늘은 인터뷰집인 <자아, 예술가, 엄마>라는 책을 소개해드릴게요. 자아, 예술가, 그리고 엄마라는 세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인데, 이 세 단어가 어떻게 연결되어있을까요? 이 책은 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엄마인 사람. 단순히 ‘엄마’라는 역할을 조명하기보다, 예술가라는 소명을 가진채 ‘엄마’라는 정체성과 자아, 엄마인 상태인 ‘엄마 됨’에 집중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총 열한 명의 여성을 인터뷰하고 있는데요. 예술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여성뿐만 아니라 해외 여성들도 등장합니다. 설치예술가도 있고,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퍼포먼스 예술가, 큐레이터, 컴퓨터음악가, 아트디렉터 등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온답니다. 저는 그중 전미래 예술가의 인터뷰 내용이 참 좋았는데요. 사실, 육아라는 게 행복하기만 한일도 하니고, 분명 쉬운 일도 아닙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가족과 부딪히기도 하고요. 전미래 예술가 또한 이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런 말을 해줍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되면서 육아로 인한 피로와 책임감은 커지고 자신만의 시간이 없어지다 보니 감정적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돌보기 힘들어졌다. 이성을 잃고 감정의 언어가 나올 때 우리는 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 부모님의 언어에서 유래된 것임을 보게 되었다. 더 절망적인 것은 끔찍이 싫어했던 부정적 언어들만 똑같이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육아로 힘들다 보니 서로에게 가시가 돋친 말을 하게 되죠. 그게 또 ‘닮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했던 행동과 말투를 따라 하기도 되고요. 그러면서 우리네 부모님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책에는 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의 고통을 드러내다 보니 내 엄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고통을 공감하게 되었다. 아이가 생후 5개월쯤 되었을 때 한강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태어난 아기와 94세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영정사진, 엄마, 삼신할매, 소멸과 에너지가 등장하는 퍼포먼스였다. 한강은 여러 갈래의 수많은 물줄기 중 하나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순환되는 삶의 거대 서사와 닮았다. 한강 물줄기 앞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삼신할매의 축복으로 태어난 아이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인의 삶을 현명하게 바라보고 스스로 축복하며 살 수 있길 바라는 엄마의 바람에서 만들게 되었다.”  ‘엄마’가 된 지금의 내 상태를 한계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반영해서 예술로 승화한 건데요. 이외에도 전미래씨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24시간 이상이지만 예술가로서  내 일을 잘 수행해야 아이를 더 깊게 사랑할 수 있기에 나만의 시간을 지키기로 했다. 오늘도 완전한 엄마로서 아티스트로서 고군분투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지혜와 건강을 기원한다.” 나의 일도 잘 수행해야 아이를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참 인상 깊지 않나요? 


‘엄마’가 되기 위해서 견디고, 희생하고, 참고, 억누른다라는 말을 쓰기도 하잖아요. ‘엄마’하면 떠오르는 고정적인 이미지도 있고요. 이런 틀에 갇힌 상태에 있는 ‘엄마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을 해준 인터뷰도 있습니다.  픽셀 아티스트 추미림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자기가 책임지기로 한 일이고 우선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의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상으로 표현되는 환상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을 품거나 이해해주는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말 그대로, ‘엄마’는 나의 상태 중 하나일 뿐이지 나라는 사람을 다 지배하고 있지 않다. 내 작업은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법이고, 이것을 제일 잘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나이고 싶기 때문에 작업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로서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는 있겠지만, 엄마이기에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로서의 나의 직업을 할 때가 가장 자신 있고,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저 또한 작은 서점이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이자, 아이가 있는 엄마입니다. 엄마로서 살기 위해 시간, 여유, 돈, 이외의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저도 제 자신을 저만의 일을 통해 조금 더 자신 있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더라고요. 


맘충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시절을 기억하나요? 이제는 유행이라기보다 널리 쓰인 단어로 입지를 굳힌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요. 잠깐만 밖에 나가 둘러보면 안절부절못하는 부모님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입니다. 아이가 식당이나 카페에서 울까, 크게 말할까, 뛰어다닐까 수없이 걱정하면서요. 저 또한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주변 눈치를 참 많이 봅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뛰어다니거나 과한 행동을 하면 문제지만, 그 이전에 우리의 기준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는 울 수도 있고,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아이의 특성을 무시하고 성인과 같은 기준을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두고 해외 예술가들의 인터뷰 내용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카페 건, 식당이건, 미술관이건, 누구도 아이가 내는 울음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이와 엄마 모두 ‘음지’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다. 아이를 환대하는 사회적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를 환대하는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져 있는지 고민해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를 해보자면, 해외에서 ‘마더스인아트 레지던스’가 있는데 뭔지 아시나요? ‘마더스인아트 레지던시’는요, 작업실과 공동육아가 결합된 공간을 말합니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예술가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진 않지만, 각자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보는 것에 동의한 사람들로서, 같이 육아를 하고 예술활동을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예전부터 품앗이 문화, 공동육아 문화가 있죠. 단순히 ‘육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엄마 이기전에 ‘나’였던 한 사람의 일과 정체성, 그리고 직업을 살리는 공동육아방식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에 서점을 운영하면서 아이도 같이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이 책에 나오는 헬렌 뉘복 베이라는 아트디렉터도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변화는 미묘하게 서서히 생겨났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직장과 업무 공간에 아이를 데려가기도 하면서,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에는 차라리 쉽다. 하지만 곧 아이가 자라 걷기 시작하면 아이는 온갖 것들을 만지게 되고 상황은 급변한다. 우선순위를 매겨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엄마가 되면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전에도 매우 계획적인 사람이었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전보다 더 치밀하고 체계적이 되었다.”     


저 또한 이런 변화를 느낍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나의 일을 처리하고, 그 이후에는 아이를 픽업하고,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등등 아주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하루를 살게 되더라고요. 다만 헬렌 뉘복 베이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말해줍니다.  헬렌 뉘복 베이는 “남녀가 동등하게 부모 역할을 하는 전제는 의무를 공유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엄마들이 사소하게 내뱉는 폄하조차도 아빠들의 ‘부모됨’ 자신감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에게 입히는 옷에 대해 불평을 늘어놔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정말 ‘헉’했어요. 당연한 듯이 아이의 모든 것을 담당하려고 했던 제 자신이 사실은 동등하게 부모의 역할을 나누지 못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고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책 속에 나온 두 가지의 좋은 구절을 더 소개해드리고 마무리해볼게요. “모든 것은 시간과 선택의 문제였다. 가족이 늘어날 때마다 상황에 맞게 계획을 수정하고 재고해야 했다. 무엇이 우리에게 최선인가? 우리 삶에 무엇이 더 발전적인가? 이러한 사고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요구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부모의 자격과 함께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된다. 또한 그것의 가치는 그 자체로 충분히 특별하며 전문적인 영역으로 편입될 필요가 있다. 엄마로서 갖게 되는 이러한 인간적인 가치야말로 예술계 안에서 더욱 고무적인 덕목이다.”  간혹 가다 보면 누구누구 엄마라고 불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저 또한 그렇고요. 하지만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엄마라는 타이틀로 불리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이를 배제한 채 그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인 나도 나이기 때문에, 지금의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겠다. 그리고 일과 가정의 균형도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여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최근 코로나19 관계로 가정에서 육아를 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우리 ‘엄마’로서의 나도, 그리고 ‘나’ 자신으로서의 ‘나’도 오롯이 ‘나로서의 나도’ 힘차게 출발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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