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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Nov 01. 2022

8. 임대차 갱신계약, 미래의 용기

<문장과 순간>

가방 속에서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 그리고 인주가 털털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인감'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주는 묵직함으로 괜히 가방을 꽈악 움켜쥐게 한다. 살면서 생각보다 인감도장을 쓰는 일이 많지 않은데, 오늘은 바로 임대차 계약을 두 번째로 갱신하는 날이다. 


임대인이 미리 도장을 찍은 상태라 계약은 빠르게 끝났다. 임차인 자리에 인감을 찍고, 몇 장의 계약서에 간인을 하고 나니 5분도 채 안되어 계약이 끝났다. 이로서 나는 앞으로 2년의 시간을 더 이 공간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내 손에 쥐어진 한 부의 갱신 계약서를 꼬옥 쥐고 나는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의 하늘은 높고 또 높아서 닿을 수 없는 막연함을 느끼게 한다. 셔츠 사이로 들어오는 한 줌의 바람은 곧 다가올 겨울의 계절을 대비하며 미리 내 몸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이내 머리 위로 쬐이는 햇볕을 통해 이윽고 봄과 여름. 그렇게 두 번의 다가올 사계를 기대하게 만든다.


계약서를 들고 가게로 돌아오니 단골손님이 한 명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도 건네지 않고 손님을 향해 대뜸 이렇게 말해버린다. "저, 오늘 임대차 계약 갱신했어요" 이런 나를 두고 손님은 가볍게 내 어깨를 두들겨준다. "이곳에서 당신의 삶을 4년을 보냈는데, 앞으로 2년간 또 저당 잡혀버렸네?" 우리는 서로 웃으며 차를 마셨고, 갱신계약을 기념해 떡볶이와 순대를 나눠먹었다. 손님이 가고 한참이나 고요한 공간을 찬찬히 걸어보았다. 8평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찬찬히, 한 발, 한 발 걸어보면 충분히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 두둑이 쌓인 많은 책들, 나의 작업공간이 되어버린 4인석 테이블 하나, 테이블 옆에 켜켜이 쌓여있는 A4 박스들, 길이가 제각각인 연필과 볼펜이 삐죽삐죽 꽂혀있는 정리함. 이 공간에는 나의 취향, 가치관, 이내 인생과 삶의 방식마저도 묻어있다.


<문장과 순간>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문장은 활자로 남지 않고 삶으로 들어와 순간을 주목하게 하고 생각하고 움직이게 만든다" 지금까지 이 공간을 운영하며 읽었던 책들 속 문장들이 내게 그랬다. 손님들이 내게 건넨 한마디의 말들 또한 드라마 속 대사이자 하나의 강렬한 문장이었다. 4년의 오뇌와 치열한 고민 또한 그랬으며, 앞으로 내게 주어진 2년도 그럴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이 지금 여기이고, 내가 마주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다. 매 순간 살아내는 삶은 살아낼 만했으며, 살아갈만했고, 또 살만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내게 주어지는 2년의 시간도 잘 살아내 보자. 잘 살아가 보자. 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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