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처음으로 장을 보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이전에도 장을 보면 '장바구니가 꽤 가벼워졌구나' '물가가 오르긴 정말 많이 올랐구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삶의 공포를 느낀 것은 생에 처음이었다. 3%대에 받은 주택담보대출이자는 7%를 육박했다. 왜 변동금리를 택했냐고 자신에게 모질게 비난해 보지만, 그땐 그게 내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남편의 계약직 업무는 5월로 계약이 종료된다. 남편은 5월 이후의 공백기간을 각오하며 하루를 살아낸다. 매달 매출은 반토막이 난다. 장바구니 물가를 고민하던 손님들, 한기를 느낀 손님들은 점차 본인의 소비를 줄인다. 다가올 내일이 두렵고, 남아있는 미래가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진다. "계산 어떻게 해드릴까요?" 나는 아들이 크리스마스에 받은 용돈을 꺼내어 계산을 한다. 계산대 맞은편에 있는 포장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종이박스를 접어 장을 본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타요'모양의 너겟을 집어 들다 헛웃음을 짓고 만다. 주차장으로 가며, 집으로 오며, 집에서 장본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한참이나 공허함 속에 머물렀다.
오늘도 다른 날과 어김없이 나의 일터로 출근한다. 먼지 쌓인 책들을 닦아내고, 매장 곳곳을 청소하고 나면 온몸에 열기가 후끈 오른다. 빗자루를 꽉 쥔 손에 오르는 열감이 오늘을 살아낼 용기를 준다. 자영업은 염원하는 일이다. 손님이 오길, 손님이 이 공간에서 잘 머물다 가길, 그리고 꼭 다시 이 공간을 찾아주길. 난방기는 가슴이 덜컥거릴 만큼의 웅장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건만, 손님이 없는 날은 이제 스스로를 위로한다. 몸이 자본인 내가 감기에 안 걸리고 따뜻했으니 됐다고. 그렇게 나는 오늘의 영업도 무사히 잘 종료했다.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맥주만 한 것이 없건만, 냉장고에 술이 떨어졌다. 내 소소한 넋두리를 받아줄 그 한 잔의 자작이 없으니 사무치게 외롭다. 나와 같은 이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어떻게 하루를 달랠까. 그러다 문득 하나의 깨달음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형철의『인생의 역사』에서는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 즉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칭한다. 언젠가 부엌의 타일이 누런 때가 끼길래 저걸 언제 닦지 혼잣말을 한 적이 있다. 남편은 뭐가 걱정이라는 듯 씩 웃고는 "5월부터는 백수니까 내가 닦을게"라고 말했더랬다. 나에 대한 동정, 남편에 대한 연민,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 사랑이 밥 먹여주냐 말하지만, 사랑이 나를 살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