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내게 늘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교통사고다. N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들. 바로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출근길에 차가 빽빽이 서있었고, 나는 무리해서 우회전을 하려다 그만 화단 경계석에 차를 가져다 대고 말았다. 퍽! 출근길의 교통사고는 얼마나 절망적인가! 내 출근시간은 지키지 못할지언정 다른 사람들의 출근시간마저 잡아먹는 일만은 막고 싶었다. 쿵덕쿵덕탈탈탈털털 이상한 소리를 내는 차를 기어코 끌고 움직인다. '조금만! 조금만! 저 앞에 주차장까지 쪼매만 더!'
나의 이 절박함이 통한 걸까? 한 아파트의 경비원이 정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었다. 폴더인사를 건네고 보험회사에 연락했다. 오른쪽 앞바퀴는 아예 퍼져서 휠까지 갈아야 했고, 뒷바퀴는 타이어가 터지지는 않았지만 큰 구멍이 나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보험사는 "일반 렉카로 안 되겠는데요. 큰 거 하나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한다. 큰 거? 큰 거는 또 처음인데? 그렇게 40여 분간 기다리니 도착한 큰 거는, 정말 컸다. 큰 거에서 내린 기사님은 내게 상황을 물었다. 조금 긴장이 되었는지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우회전하다 화단 경계석에 부딪혔다고 상황을 설명하자, 기사님이 이렇게 말한다. "차랑 손잡고 화단에 꽃 보러 다녀오셨나 보네요" 한껏 긴장해있는 내게 건네지는 농담은 정말이지 유쾌하고, 또 멋스러워서 그만 웃고 말았다. 기사님도 반응이 좋은 나를 두고 크게 웃는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 웃고 넘기자. 이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가! 나중에 수리센터에서 받은 견적서에는 공임비를 포함하여 총 66만 원이 찍혀있었는데, 이 금액마저도 이젠 하나의 개그 같다. 66이라니. '내 옷 사이즈랑 같잖아? 금액도 찰떡같이 잘 나왔네'
어쩌면 내 하루를 온통 잡아먹을 수도 있는 사건이, 기사님의 한 마디로 시시하게 넘어가버렸다. 그 덕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고, 우연히 이날 저녁에 개기월식이 있었다. 지구의 그림자가 붉을 달을 가리고, 그 달은 다시 천왕성을 가리는 진귀한 밤하늘의 경이로움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교통사고로 온종일 마음이 심란했다면 눈에 담지도 못할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말 한마디로 모든 걱정 근심을 떨쳐내 준 기사님의 언어유희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까. 그렇게 독서모임 멤버들과 달 사진을 찍으며 '내가 잘 찍었니' '너는 못 찍었니' 하고 있는데 한 멤버가 이렇게 말한다. "달이 눈썹만 했는데 이제는 눈곱만 하네. 에잇! 사진 다 찍었다" 그네의 말에 우리는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오전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독서모임을 할 때 한 손님이 전해준 말이 떠오른다. "우주를 보고 싶다면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공기는 투명하기 때문에 올려다보는 하늘이 그냥 '쌩' 우주인 셈입니다" 우주를 보려면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면 된다는 그 말이 얼마나 멋지던지. 내가 오늘 찍은 달의 사진도 우주를 담은 거구나 깨닫게 된다. 사진 안에 담겨있는 우주의 경외감을 함께 나누고 싶어 다른 손님들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다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를 즐기세요!'라고. 그런데 곧 손님이 답장을 보내온다.
'울집 구석, 방금 소식을 전달해드립니다'
아내ㅡ오늘 달을봐야해
남편ㅡ보름이야?
아내ㅡ아니, 월식이잖아.
남편ㅡ삼식이도 아니고 월식?
아내ㅡ밥밖에 모르는 인간아 헤어지자.
모든 이들의 말을 가만가만 곱씹어보면 이런 언어유희와 해학이 담겨있다. 그 말들은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네들의 경험, 생각과 가치관, 마음씀 그 모든 것이 묻어있는 것이다. 삶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이다. 누구나의 말에는 이런 유쾌함, 그리고 아름다움이 있다. 어쩌면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말들을 '아름답다' 인지하고, 감사하게 여길 수 있는 이 순간이 내겐 벅차오른 감동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