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직업, 엄마의 사연
5살 난 우리 아들은 조준이 영 서툴다. 변기에 앉았다가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촉촉함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들아, 변기 커버 좀 올려!"라고 잔소리를 해봐도, 변기와 타일 바닥에 노란 자국들은 여전히 흩뿌려져 있다. 격주에 한 번 했던 화장실 청소는 이제 매일, 매일을 해야 하는 일과가 되었다. "변기 커버 좀 올리라고!"라고 외치는 고함 또한.
오늘도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청소솔을 든다. 청소 전용 업체나 구입하는 1말(약 18L) 짜리 대용량 세정제를 화장실에 끼얹는다. 화장실에 가득한 아들의 흔적을 본다. 일주일에 치약 한 통을 쓰는 우리 아들. 아이는 치약 짜는 양을 조절하지 못해, 늘 세면대를 치약으로 바른다. 그 외에도 깨문 자국이 가득한 칫솔이라던가, 물때가 낀 아이의 자동차도 눈에 들어온다. '빨리 움직이자' 나는 화장실 청소 뒤에 예약되어 있는 '저녁밥 차리기' 미션을 위해 서둘러 몸을 움직인다. 흔들흔들, 쓱싹쓱싹, 샥샥샥샥.
화장실 청소가 끝나고 코 끝을 맴도는 락스향으로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 찌릿한 락스향이 나야만 청소다운 청소를 한 것만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락스향을 향긋하게 생각했던 건, 인공적인 향기는 싫다고 난리 치면서도 락스향은 좋게 느껴지는 건. 락스향이 더 이상 머리 아프지 않았던 건,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신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충격적인 일을 겪었다. '화장실'의 진짜 모습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곳곳에 묻어있는 곰팡이와 물때, 변기 커버 밑에 튀어있는 거무튀튀한 대변 자국들, 대소변의 흔적들이 묻어있는 변기 속까지. '공중화장실이 아닌, '집'에서의 화장실이 더러울 수 있다니!' 내가 기억하는 화장실은 늘 깨끗했다. 변기에 앉기 싫었던 적이 없었고, 세면대에서 세수를 하기 싫었던 날도 없었다. 화장실은 그런 장소여야만 했다. 분명 화장실은 '그런' 장소였는데.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화장실 청소를 막 마치고 난 내 모습을 훑어본다. 락스물이 튀어서 색이 변한 티셔츠, 최대한 위로 걷어올렸어도 축축하게 물이 떨어지는 바지, 락스물로 반들반들 거리는 발, 고무장갑에 구멍이 뚫렸는지 물이 들어와 허옇게 부풀어 오른 손. 철벅거리며 화장실 청소를 하는 동안 얼굴에 튄 물기를 수건으로 쓱 닦으며 나는 오랫동안 수건 속에 얼굴을 감춰본다.
엄마는 늘 집에서 락스물이 튄 반팔을 입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옷은 바뀌어도 옷마다 락스자국은 여전했다. 청소는 내일도 모레도 이어져야 하기에, '락스물 튄 후줄근한 티셔츠'는 엄마의 업무복이 되었다. 엄마의 곁에서는 은은한 락스향이 났고, 나는 그게 엄마의 향인 줄 알았다. 아들에게는 "변기 커버 좀 올려라"라고, 딸에게는 "칫솔 좀 걸어두어라"라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락스로 얼룩져있는 티셔츠를 입은 나의 모습에서 엄마를 발견한다. 내 몸에 진동하는 락스향기가 이제는 향긋하게 느껴지는 지경이 된 순간에 엄마를 떠올린다. 우리 집 화장실에서도 늘 났던 그 락스향. 엄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락스라는 이름의 향수를 뿌리고 살았구나. 나도 이제, 엄마가 되어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