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를 이용하라, 나를 남용하라

[도서] 칼세이건, 코스모스

by 애매한 인간 채도운

지적인 허영심은 내가 책을 읽게 만드는 동력이다. 그러다 곧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허영심까지 이어졌는데, 바로 아래 세 인물의 사진 때문이었다. 처음 알베르 카뮈가 담배를 물고 있는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그의 담배연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고독한 사유자의 시선에 붙잡혀서 좀처럼 헤어날 수가 없었다. 그날 나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샀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으며 더 뚜렷이 알게 되었다. 진정한 멋은 담배를 태운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절한 고뇌와 사유에서 발산되는 고유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조앤 디디온 역시 마찬가지였다. 온갖 서류와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글을 쓰는 그녀의 모습에서 지성이, 마른 몸에서 묘하게 위엄이 드러났다. 그녀를 따라 안경을 써보기도 하고, 나만의 책상을 만들어 책을 한가득 쌓아 올리기도 하고, 활자에 빠져들어 책만 읽어보기도 했지만 나는 끝내 그녀와 같은 분위기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디디온의 분위기는 일상의 스타일이 아니라, 세계를 통과해 온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흔적에 가까웠다.


이만하면 그 허영심을 내려놓을 때도 됐지만, 나는 또다시 한 인물에게 빠지고야 만다. 바로 칼 세이건이다. 칼 세이건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깔끔한 이목구비에 선한 인상, 단정한 수트 차림까지- 그야말로 이상형이었다. 어릴 적 연예인 사진 한 장 모아본 적 없던 내가, <창백한 푸른 점>을 사면 그의 엽서를 준다는 말에 책을 냉큼 집어 들었을 정도였다. 그 엽서는 한동안 우리 집 냉장고 문 앞에 붙어 있다가, 이후에는 서점 내 캐비닛 전면을 차지했다.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나는 늘 칼 세이건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참고로 아들의 영어 이름은 '칼'이다. 물론 칼 세이건의 '칼'이다) 나는 이런 허영심이 아주 인간적인, 그리고 유용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저 세계에 속해 있고 싶다", "저 사람처럼 말하고,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욕망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허영심으로 출발해, 책으로 통과해, 결국은 나를 돌아보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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