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너스]책에서 책으로 꼬리를 물고. 소재는 무궁무진!

취미는 독서가 아니라 독서모임입니다.

by 애매한 인간 채도운

언젠가 독서모임 멤버들이 내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숨을 고르는 정도이고, 뭉친 목과 어깨를 풀기 위한 스트레칭이 전부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취미도 없는 나에게 남은 것은 결국 독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독서모임! 독서모임은 꽤 괜찮은, 심지어 가성비까지 끝내주는 취미다. 책 한 권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배울 수 있다. 게다가 확장성까지 있어서 한 권의 책이 또 다른 책을 불러오고, 세상을 넘어 우주를 연결한다. 모임도 한 방향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독서모임은 점점 다양해졌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현실과의 괴리감에 멈칫하는 순간이 있다. 철학을 이야기하고, 수백 년 전의 역사와 먼 나라의 문화를 이야기하다가도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카드값과 월세 같은 현실이 눈앞에 놓여 있다. 자꾸만 책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이 느껴지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고 온통 부정적이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멤버들과 함께 우당탕탕 경영·경제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막상 모임을 열어보니 예금과 적금의 차이를 모르는 청소년 멤버도 있었고, 도대체 Fed라는 기관이 뭐길래 뉴스에 자꾸 등장하느냐고 묻는 멤버도 있었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부터 읽기 시작했다. 저자가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썼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우리는 쉬운 책이 필요했다.


책에는 ‘쥐 탈출 게임(Rat Race)’이 등장한다. 넓은 보드판 한가운데 동그란 원형 칸이 있는데, 게임을 시작하고 두 시간 동안 우리는 계속 그 원형을 맴돌았다. 치과에 가거나 냉장고를 바꾸는 사치재 칸에서는 가진 돈이 털리고, 갑작스럽게 아이가 태어나거나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같은 자리만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 우리의 삶이 그 쥐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게임을 하며 주식 투자나 현금 흐름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실제로 한 멤버는 게임 속 재테크를 통해 가운데 원형판을 탈출해 더 넓은 보드판으로 나아가기도 했는데, 우리는 부러움에 박수를 쳤다. 보드게임은 무려 30만 원이라는 사악한 가격이지만, 막상 해보니 경영·경제를 꽤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독후활동으로 최고였다.


이때의 흥미를 이어 조금 더 난이도 있는 책에 도전하기로 했다. 오건영의 <부의 시나리오>,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위기의 역사>, <환율의 대전환> 같은 책을 함께 읽었다. 미 연준의 금리가 왜 우리나라 통화정책에 중요한지, 세계 경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생겼다. 이때 자신감이 붙은 우리는 소수점 투자도 해 보고, 비트코인을 사 보기도 했다. 책으로만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조금씩 현실에서 직접 시험해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우당탕탕 시작한 경영·경제 독서모임은 어느덧 820페이지에 달하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읽기까지 이어졌다. 이 모임이 앞으로 어디까지 갈까?


과학 독서모임도 내게는 소중한 모임이 되었다. 진주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초소형 인공위성 ‘진주샛-1B’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우주항공청, 경상국립대학교 등 우주항공 관련 기관과 연구 인력들이 모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26년에는 ‘진주샛-2’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같은 도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기술이 어떻게 가능한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우주 이야기가 우리 도시에서 현실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학이 이렇게 우리 삶 가까이에 와 있다면, 더 이상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남의 이야기처럼 둘 수는 없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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