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Feb 28. 2019

25. 아빠가 출근을 안 했다 上

<아빠가 출근을 안 했다 上>

(6화 '비린내 나는 아빠'편을 읽으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오늘 아빠가 카페에 출근을 안 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처음 카페를 오픈하고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출근했던 아빠. 그런 아빠가 출근을 안 한다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빠가 맡은 업무는 카페 문을 열고 환기시키기, 테이블보를 털기, 바닥 청소기 돌리기, 밀대로 바닥 닦기, 유리창을 닦고 커튼을 치기, 음료 냉장고 닦기 등ㅡ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의 손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아빠 덕분에 출근을 30분씩 늦게 했던 나. 갑자기 30분 일찍 일어나려니 적응이 안된다. 아빠가 했던 모든 일들을 하려니 막막하다.

'아빠, 어디 갔어요?!'

.

.

.

아빠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벌써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아빠는 점점 초조해졌다. 퇴직 후 귀어를 결정했는데 온 가족이 반대를 하고 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시작을 못했다. 어디에 정착할지도, 배를 사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도 끝가지 귀어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빠에게 우리는 다섯 가지 과제를 주었다.


첫 번째, 배를 사기 전 다른 사람의 배를 얻어 타면서 낚시를 해보기. 아빠는 귀어 학교에 입학해서 알게 된 사람들과 남해, 통영, 거제를 휘젓고 다녔다. 이어서 이름 모를 여러 섬들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배를 타고 온 날은 손에 꼽았다. 다른 사람의 배를 얻어  기회가 잘 없을뿐더러, 어쩌다가 탄 배 위에서는 엄청나게 눈치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경쟁자들이 들어온다는 의미니까 곱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는 배를 얻어 타기 위해서 엄청나게 사정했다. 제발 한 번만 태워달라고. 무료로 일손 도와드린다고. 아빠는 그렇게 어쩌다 배 한 번 얻어 타는 날이면 생선 다섯 손을 가져오곤 했다. 함박웃음을 짓곤.


두 번째, 텃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오기. 사실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을까? 아빠는 귀어 학교의 도움을 받으면 정착지를 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귀어 학교에서도 텃세는 방법이 없단다. 친인척, 인맥 모두 다 동원해서 조금이라도 발 딛고 살 수 있는 곳에 가란다. 아빠는 좌절했다. 조직생활 35년 차, 회사가 전부였다. 회사 사람들이 전부였다. 아빠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 아주 먼 이웃 친척에게 잘 지내냐고 안부 전화를 걸었다. 오지 말라는 이웃 친척의 명확한 거부에 자존심 상할 만한데도 계속 갔다. 라면박스, 과일박스를 이고 매주 찾아갔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 그 먼 거리를 매주 갔다. 아빠의 정성이 통한 걸까? 먼 이웃 친척이 배를 태워주신단다. 아빠는 냄비, 버너, 라면 등 배 위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그런데 아빠는 그 날 바로 되돌아왔다. 의아하게 보는 가족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빠는 혼자 방 안에서 웅크려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아빠가 두 번째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집은 고요했다. 엄마는 사무치게 외로웠다. 다 큰 딸과 아들은 본인 일 한다고 바쁘다. 그나마 무료한 시간을 달래줬던 남편은 먼 바다로 갔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게 됐다. 혼자 밥상에 앉아 있노라면 한 없이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어쩌다 밥을 먹으면 물을 만 밥에 김치가 다였다. 아무도 먹지 않는 반찬은 하기가 무섭게 버려졌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큰 집에엄마 혼자 잠을 청한다. 추운 날씨지만 혼자 있는 집에 난방을 때우기 아까워서 1인용 전기장판을 샀다.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려도 고요히 잠을 청해 본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이 흐르고 남편이 돌아왔다. 머리는 하얗게 세고, 손은 생채기가 가득이다. 그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자존심이 상처 입어 움츠려있던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엄마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아빠가 두 번째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나와 동생은 안절부절못했다. 아빠의 간절함도, 엄마의 외로움도 모두 이해하기 때문에 누구 편에 서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빠는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처럼 머리가 까맣지 않았고, 예전처럼 허리가 곧지 않았다. 손은 거친 주름이 잡혔으며, 몸에서는 할아버지 냄새가 났다. 그런 아빠가 작은 배 한 척에 몸을 싣고 거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서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싫었다. 나와 동생은 결국 엄마 편에 서기로 했다. 아빠에게 주어진 다섯 가지 과제는 못할걸 알고 내는 아픈 숙제였다.  



작가의 이전글 23. 나의 편협한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