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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Feb 27. 2019

23. 나의 편협한 시선

나의 부끄러운 면, 오늘 용기 내서 솔직히 고백합니다.

<나의 편협한 시선>


카페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들어오시는 손님마다 옷차림도, 시키는 메뉴도 가지각색이다. 테이블에서 불리는 이름도, 테이블마다 들리는 이야기도 다양하다. 오늘 나는 이런 다양한 손님들을 통해서 내 속의 편협한 시선과 마주했다.  


카페는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있다. 그것도 '읍'에 있다. 그리고 여기 읍에는 60대 이상의 노년층 인구가 많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사부작사부작 마실*다니며, "여기가 뭐하는 덴고?" 하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꽤 된다. 나는 "카페예요"라는 간단한 대답만을 남긴 채 계속 내 일을 한다. 그러면 어르신들은 조금 둘러보다가 곧 나가신다. 구차하게 덧붙이자면 불친절한 건 아니다. 꼭 웃으며 인사는 한다.

* 마실 : 마을의 방언으로 이곳 저것 놀러 다니는 걸 일컫는 말로 쓰인다.


오늘도 어김없이 어르신 한 분이 들어오셨다. 주춤주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서 먼저 대답해드렸다. "안녕하세요, 여기 카페예요." 조금 버르장머리 없이 보였으려나.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니 카운터로 오신다. 그리고 메뉴판을 들여다보신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헤이즐넛 커피- 메뉴판은 한글로 쓰여있지만 한글이 아니었다. 어르신은 한참, 아주 한참 동안이나 메뉴판을 들여다보셨다.


나중에 어르신은 카페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커피를 한 잔 달라고 하신다. 주문을 마치신 어르신이 카페를 둘러보기 위해 등을 돌리는데, 난 그런 어르신을 붙잡고 "계산 먼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아차' 한 표정의 어르신은 느릿한 손으로 호주머니 속 카드를 꺼냈다. 그렇게 어르신은 연하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을 건네받고 카페를 나가셨다. 그런데 가신 줄 알았던 어르신이 다시 들어와서 한 마디 건네신다.


"자주 뵈면 좋겠네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 정체가 뭘까? 왜 일까? 왜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이 정체가 뭔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답을 못 찾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서야 나는 그 답을 찾았다. 오늘 방문하신 손님들을 통해서 그 답을 알고야 말았다.


오후 8시 즈음 들어오신 손님들은 가족이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딸.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가족에게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밝은 기운이 감돌았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간간히 들리는 웃음소리마저도 상쾌했다. 세 사람에게서 사랑이 느껴졌다. 잠시 뒤 손님들은 카운터로 오셔서 커피를 주문한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신다.


"사장님 것까지 한 잔 사드릴게요. 같이 마셔요."


카페를 오픈하며 사장의 음료까지 사준다는 손님은 처음 만나본다. 한적한 카페를 바라보며 지쳐있던 나를 한 순간에 일으켜 세워준다. 그 말 한마디에 피곤함이 모두 잊혔다. 단순히 커피를 사고파는 거래를 넘어서, 나를 더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너무도 감사했다.


겨우 시 커피 한 잔 사주신다는 손님을 겨우 만류하고 계산을 도와드린다. 손님은 루이뷔통 로고가 박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신다. 자세히 보니 들고 계신 가방도 루이비통이다. 들고 있는 차키도 외제차의 로고가 박혀있다. 그리고 따님분을 보니 묘하게 귀티가 흐르는 것 같다. 이어서 이것저것 물어볼 때도 뭔지 모르게 당당함이 느껴진다. 나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뭔지 모르게 위축되는 것 같다.


손님이 또 말을 건넨다. "이런 공간을 차리는데 돈이 많이 들었겠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동문서답을 한다. "아 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모은 돈으로 차렸어요." 잠시 뒤 내가 대답한 말을 되뇌어본다. 왜 그 이야기를 했을까? 공공기관 다닌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렇게 말했을까? 저 대답이 오히려 나를 더 별 볼 일 없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처량했다. 너무도 부끄러웠다. 한심했다.


오늘 나는 나의 편협한 시선과 마주했다. 결코 반갑지 않았던, 영영 알고 싶지 않았던 발견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외관을 보고 구매력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돈 있는 사람 앞에서는 필요 없이 위축되고,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 스스로 강한 자 앞에서 약하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한 없이 처량하고, 부끄럽고, 한심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손님들을 통해서 내 속의 편협한 시선과 마주했다. '내 몫의 커피까지 사준다'는 말 보다, '자주 보면 좋겠다'는 그 말이 더 아름다운 말임을 뒤늦게 알게 됐다. 이 사실이 너무 부끄러우면서도 감사해서 용기 내보기로 한다. 솔직하게 나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더 이상 처량하고, 부끄럽고, 한심한 나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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