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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02. 2019

27. 아빠가 출근을 안 했다 下

<아빠가 출근을 안 했다 下>

(6화 '비린내 나는 아빠'편을 읽으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오늘도 아빠는 카페에 출근을 안 했다. 이제 나는 아빠가 했던 일을 스스로 하기 시작한다. 카페 문을 열고 환기시키기, 테이블보 털기, 바닥 청소기 돌리기, 밀대로 바닥 닦기, 유리창을 닦고 커튼을 치기, 음료 냉장고 닦기 등ㅡ 혼자서 하다 보니 청소하는데만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제는 2시간씩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 청소를 마무리하고 청소도구를 정리한다. 그동안 아빠가 어디선가 하나 둘 가져온 청소도구들이 한가득이다. 유리창을 닦는다고 모아놓은 신문지, 수건을 반으로 잘라 놓은 걸레들, 누가 갖다 버린 걸 주워왔는지 상처가 가득한 청소기. 청소도구 하나로 아빠의 성격이 다 보여서 웃음만 나온다. 아빠가 보고 싶다.


아빠는 결국 우리가 낸 다섯 가지 과제를 전부 완수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빠가 이만 포기하길 바랬다. 먼 이웃 친척은 아빠를 비난했다. 군대에서 35년 있었으면 연금 받고 살면 되는데, 왜 자꾸 바다로 오겠다고 하냐고. 우리도 아빠를 뜯어말렸다. 그동안 고생했으면 이제 좀 쉬고,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고. 그런데도 아빠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시간 때우는 삶은 사는 것 같지 않다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사는 사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줄 게 없어 속상하다. 그동안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숨 가쁘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은 게 없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땅도, 집도, 재산도 없다. 그래서 아빠는 더 귀어를 고집한다. 바닷가에서 터전 잡고 살면서 자식들 손 벌리지 말자고 다짐한다.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 손녀와 손자들을 데리고 뻘에 게를 잡으러 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것밖에 줄게 없어서, 그것만이라도 물려주고 싶어서 더 고집을 부려본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분명 몇 번이나 군대를 그만두고 뛰쳐나오고 싶었을 테다. 어떤 곳보다 폐쇄적인 군대라는 조직이 답답했을 테다. 하지만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서 참았겠지. 아빠도 '아빠'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면 한 사람일 뿐일 텐데ㅡ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 것처럼 아빠도 그랬겠지. 아빠도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면 한 사람일 뿐일 텐데ㅡ 아빠도 본인을 위해 하고 싶은 게 있겠지.


우리는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귀어를 반대했다. 아빠가 걱정돼서, 아빠가 멀리 가는 게 싫어서 한사코 반대했다. 하지만 아빠라는 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반대가 어려웠다. 군대라는 조직을 나와서 본인 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믿고 응원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는 이제 아빠가 없는 카페에 익숙해져야 한다. 내가 가장 익숙해지기 어려운 건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빠랑 카페 청소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그 찰나의 순간. 회사 다니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려웠던 아빠. 아빠를 그렇게 자주 볼 수 있었던 그 찰나의 순간이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염색한 아빠랑 찰나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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