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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Mar 01. 2019

26. 아빠가 출근을 안 했다 中

<아빠가 출근을 안 했다 中>

(6화 '비린내 나는 아빠'편을 읽으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오늘 아빠가 카페에 출근을 안 했다. 처음 카페를 오픈하고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출근했던 아빠. 아빠가 맡은 업무는 카페 문을 열고 환기시키기, 테이블보를 털기, 바닥 청소기 돌리기, 밀대로 바닥 닦기, 유리창을 닦고 커튼을 치기, 음료 냉장고 닦기 등ㅡ 처음부터 끝까지 아빠의 손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아빠 덕분에 출근을 30분씩 늦게 했던 나. 갑자기 30분 일찍 일어나려니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아빠가 했던 모든 일들을 하려니 막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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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줄 알았는데 벌써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아빠는 점점 초조해졌다. 퇴직 후 귀어를 결정했는데 온 가족이 반대를 하고 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시작을 못했다. 어디에 정착할지도, 배를 사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런 아빠에게 다섯 가지 과제를 주었다. 그중 두 가지는 배를 사기 전 다른 사람의 배를 얻어 타면서 낚시를 해보기, 텃세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오기다. 아빠는 첫 번째 과제는 무사히 마무리했지만, 두 번째 과제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아빠에게 주어진 세 번째 과제는 배 친구들 만들기다. 어업을 '업'으로 하려면 배 친구들이 필수로 있어야 한다. 거친 파도 앞에서 작은 배는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혹시 배가 풍파를 만나 좌초된다면 시체 조차 찾기 어렵다. 최악의 상황에, 정말 최악의 상황에 육지에 남아있는 우리는 어떨까? 우리는 아빠의 영혼 없는 육신마저라도 간절히 붙잡고 싶을 텐데ㅡ 요새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암초도 피한다고 하지만 바다는 변수가 많은 환경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날 수 없다. 그래서 한 번 바다에 나갈 때 여섯 명, 여덟 명이서 무리 지어 나가게 된다. 아빠가 바다에 가서 살기로 결정한 이상 배 친구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텃세도 못 이긴 마당에 배 친구들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미 다들 짝이 있을 텐데.


네 번째 과제는 엄마가 지정하는 사람 30명을 만나보기다. 엄마는 아빠가 너무 걱정돼서 이미 퇴직한 선배들을 찾아가서 경험담을 찾아들었다. 이미 귀농 또는 귀어하고 계신 분들을 찾아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일일이 묻고 다녔다. 그래서 엄마는 이미 시작하지 않고도 아빠의 고생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 것이다. 엄마는 퇴직한 선배들, 현직에 있는 후배들 등 아는 사람을 총동원했다. 가족의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으니 이 고집쟁이를 설득해달라고 부탁했다.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한다. 아빠는 허리디스크 수술도 한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심장 부정맥 수술도 두 번이나 한 사람이다. 이렇게 온몸이 아픈 사람이 왜 굳이 거친 바다를 가냐고 말렸다. 아빠가 가진 경력이면 계약직 자리도 들어갈 수 있다고 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는 정말 왕고쟁이었다. 어떠한 설득도 협박도 회유도 통하지 않았다. 아빠는 단칼에 거절한다.

"어차피 1~2년 있다 나와야 하는 계약직 자리에 들어가느니, 40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바다로 가겠다."


다섯 번째 과제는 무슨 돈으로 귀어를 할 건지 계획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아빠는 이 시대의 다른 아빠들과 다르지 않다. 가난했던 집안 환경 때문에 아빠는 휴일마다 공사현장에 나가 막노동을 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나와 동생의 식비와 학비를 댔다. 아이들이 다 커서 금방 자립할 줄 알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학비를 내야 했다. 결국 아빠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그나마 나라에서 관사(군인가족들에게 지급되는 집)를 주었지만, 그마저도 제대와 동시에 나와야 한다. 당장 나가서 살집을 마련하기도 벅찬데, 귀어에 필요한 배를 사고 어업권을 사고할 돈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사고만 치는 딸이라 그동안 모은 돈을 카페에 쏟아 넣었다. 동생은 중간에 대학교를 포기하고 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보다 경력자다. 동생은 힘들게 모은 육백만 원을 엄마랑 나 몰래 아빠에게 주었다. 그동안 고생한 거에 비하면 작은 돈이지만, 배사는데 보태라고 주었단다. 아빠는 쭈뼛거리며 돈을 받는다. 그리고 염치 불구하고 빌리겠다고, 꼭 갚겠다고 말을 건넨다. 잘난 자식들이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돈도 능력도 다 애매해서, 효심마저도 애매하다. 그 사실이 뼈저리게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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