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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Jan 30. 2019

4. 아아, 드디어 손님에게 음료를 쏟았습니다.

퇴사 후 카페, 조금씩 두려워집니다.

<아아, 드디어 손님에게 음료를 쏟았습니다.>


토요일의 영향인지, 그나마 풀린 날씨의 영향인지 손님이 왔다. 문제는 손님이 몰아서 한 번에 왔다. 카페를 오픈하기 전 여러 시나리오 상상을 하며 걱정했던 것 한 가지다. 차의 경우는 뜨거운 물에 우리기만 해서 쉬운데, 들어오신 손님들이 다 커피만 시킨다. 커피는 원두를 갈고, 내리고, 머신을 닦고, 다시 내려야 한다. 커피는 가격은 저렴한데 참 손이 많이 간다. 어째 어째 아메리카노 4잔, 카페라테 3잔을 내리고 쟁반에 담았다. 유리컵이다 보니 묵직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손님이 계신 자리까지 갔다. 한 고비를 넘어섰다고 생각해선지 힘이 풀렸다. 그 순간 커피잔은 바닥과 벽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힘들게 내린 커피들은 손님의 하얗고 아름다운 코트를 흠뻑 적시 고선, 본인들이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바닥에 장렬히 전사했다.




'시발, 망했다.'


아니 이렇게 당혹스러운 순간에는 욕은 반사적으로 나오나 보다. 정적이 흘렀다. 손님이 없어 한적한 카페의 정적과는 차원이 다른 정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무섭고 잔인하게 깨질 것만 같은 그런 정적이었다. 나는 온몸과 손을 부들부들 떨며 주방으로 뛰어갔다. 어젯밤에 힘들게 빨아 말려온 행주 더미를 모조리 꺼냈다. 흥건해진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손님의 옷, 신발, 소지품을 닦았다. 내 입은 '죄송합니다'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 외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 말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이었다. 닦아도 닦아도 그 하얀 코트는 하얘질 생각을 안 한다. 창업하기 전 상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 1위'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커... 커피 다.. 다시..."


"아니요, 이다음에 약속이 있어서..."


"화.. 환불.."


"네, 여기 카드요."


"저... 명함.... 연락.."


울음도 안 났다. 그저 온몸을 떨 뿐이었다. 그 손님과 같이 온 친구들은 '이러시니까 뭐라고도 못하겠다'라는 한 마디를 했다. 내가 봐도 내가 가여웠다. 카드 단말기에서 '취소'버튼을 누르는 내 손은 눈에 보일 정도로 처량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처절하게 사죄드리며 손님을 보냈다. 그 순간 새로운 손님 두 명이 입장했다. 난 세상 처량한 모습으로 주문을 받고, 커피를 내렸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가구를 닦기 시작한다. 또 그 뒷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물티슈를 가져오더니 테이블을 닦으신다. 삼삼오오 모여 깨진 유리를 모으고, 커피가 튄 테이블과 의자를 닦기 시작한다. 잔잔한 음악소리가 카페 분위기를 진정시켜준다.


한 참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아직도 그 상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커피잔이 닥으로 떨어지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끈적이는 볼을 만져보니 튄 커피가 굳어있었다. 오른쪽 어깨의 커피 마른 자국이 아까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7잔의 커피는 1톤짜리 역기와 같았다. 내 두 손은 '감당하지 못할 무게를 들었군' 이라며 덜덜 떨리고 있다. 손님한테 커피를 쏟던 그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작은 실수 하나로 카페 문을 평생 닫을 수 있겠다.'


회사에서 팀장님한테 욕을 먹어도 이것보단 나았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생각처럼 잘 안 굴러가도 회사 일이니까 이 정도의 책임감과 부담감은 없었다. 카페에서의 저지른 실수 하나로 SNS에서 매장당할 수 있었다. 차라리 무릎을 꿇고 빌고 싶었다. 너무 죄송하다고, 그러니 SNS에 부정적으로 올리지 말아 달라고-


여유롭게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을 때는 못 느꼈다. 밖에서 얼마나 처절하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경제위기라는 말이 뉴스에서 자주 보여도 내 일이 아니었다. 소상공인이 된 지금은 살아가는 게 처절해지고 있다. 손님이 카페 소품을 훔쳐가도 소란스럽게 만들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컵이 깨져도 컵 값 걱정보다 손님들 눈치가 보였다. 손님께 커피를 쏟는 대형실수를 저지르고 나자 폐업할까 두려웠다. 추워지는 날씨에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날에는 비참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텅텅 빈 거리를 보자 암담했다. 경제위기로 주변 상가들에 '임대' 포스터가 붙었을 때는 곧 내가 될 것 같아 슬펐다. 퇴직금을 몽땅 쏟아 넣어 시작한 이 카페, 이 하루하루가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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