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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애 Jun 01. 2017

소란에 대처하는 태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그렇다. 나의 마음은 소란스럽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이별했지만 사랑했던 날들. 그러나 끝내 상처로 얼룩져 모조리 없던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각 조각낸 마음을 알록달록 예쁜 새 조각들로 채워나가는 날들이 다양한 감정들로 달그락 달그락 소란스럽다. 반갑고, 기뻤고, 좋지만 다양한 색감으로 얼룩진 그림을 마주했을 때, 화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 해서 갸우뚱하듯 나에게 찾아온 소란이 문득, 궁금해졌다.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싶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두려웠던 것일까? 그 소란에 대해 자각한다는 것은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함일 수도, 해결할 수 없는 미해결 된 과제를 혼자서 떠안는 억울함 일 수도, 되돌릴 수 없으며 되돌리고 싶지도 않은 일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일 수도, 새롭게 찾아온 인연을 놓치게 되는 것일 수도 있기에 그냥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없던 일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물론, 어느 정도 무뎌진 이유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고, 그런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연속된 시간과 그 속에 존재하는 내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기에 연결되어 있는 기억과 감정의 변화는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다. 모른 척 한다고, 없던 일로 여긴다고,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그 틈을 허락하지 않아서일지도. 어쨌든 어떤 이유로든 이 소란은 불편하다.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없어서 소중한 감정을 놓칠까봐, 가꿀 수 없을까봐 조바심이 난다. 



누군가를 새롭게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새로운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그 세계가 나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연결은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세계와 세계가 연결되는 일은 삶의 전부와도 같다. 그 연결이 끊어질 때의 암담한 슬픔과 시작될 때의 설레는 기쁨이 하나가 되어서라면 이 소란을 잠재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나온 문을 닫고, 새로운 문을 향해 더 성큼 성큼 걸어가는 것뿐이다. 


“가끔 당신 생각이 들려 귀를 잊으려 했지요. 나보다 훨씬 커진 내 귀를 고흐처럼 자를 수 없으니까 잊으려고, 잊기 위해 애썼던 거겠지요. 참, 속절없는 일인데 말이죠. 그러나 얼마나 다행이에요. 시간은 흐르고, 잊으려 애쓰지 않아도 귀는 작아지고 우리는 떨어져 있어 서로를 다시,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시간들이었고, 퍽 도움이 됐던 경험이었어요. 진심입니다.” - 박연준의 소란 - 



가끔 그 사람의 소리가 들린다고, 그래서 귀를 잊는다는 글귀가 콕 박히는 이유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떨어져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떨어져있기 때문에 서로를 똑바로 볼 수도 있고, 헤어짐의 이유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역시 공감한다. 애써 합리화하고, 애써 이해하려 하고, 애써 노력했던 일들이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던 일이 될 때, 모든 것은 명확해진다. 



그 명확한 시각이 새롭게 다가온 사랑에게만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핑크빛으로 물든 탓이다. 존중받는다는 것, 이해받는다는 것, 사랑받는다는 것, 즐겁다는 것이 모두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서로가 원하는 새로운 나날들을 그런 감정들로 가꿔갈 수 있을 때, 불편한 소란과는 다른 행복한 소란이 된다. 나는 소란을 애써 잠재우지 않기로 한다. 이 소란의 이유를 이해받고, 가꿔나가는 것조차도 나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랑했었던 사람이 아니라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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