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라를 사랑했을 거야.
10년 전 즈음이다.
이애라는 심포지엄을 진행하라는 업무를 배정받고 고민에 빠졌다.
행사는 10월, 지금은 8월, 게다가 해외 연자를 초청해야 한단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는 행사였다.
우선, 장소는 정해졌으나, 예약이 약간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행사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없는 상황.
알아보니, 연자에게 초대장만 보냈을 뿐, 세부 일정이 조율도 안되어 잇고, 주제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뿐인가... 그 와중에 연자에게 얼마나 저자세인지, 이애라는 행사를 한 달도 안 남았으나 계획안을 수정, 수정, 또 수정....
정작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은 본인의 관심사에 대한 잔소리만 늘어놓을 분. 큰 그림을 보면서 양보하는 사람도 배려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 와중에 애국자는 정말 속 뒤집어지게 하는 캐릭터였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학식은 뛰어날지 몰라도 사고방식은 구한말이었다.
이애라가 박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이 회의를 할 때마다 커피를 타오라고 했다.
더 우스운 것은 애국자의 상사는 애국자의 대학선배였는데, 그는 이애라에게 커피 타다 주라며 애국자 편을 들었다.
이애라는 나중에 다시 상의드리겠다고 하며 애국자의 요청에 대한 답을 차일피일 미뤘다.
어느 날 애국자는 외국인과 회의할 일이 생겼다. 외국기업과 심포지엄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애국자는 난데없이 이애라를 회의 때 불렀다.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는데, "you know~"(도대체 뭘 안다는 거야...), "uh....."등 쓸데없는 말들을 동원해 가며 띠뚬때뚬 영어를 구사했다.
미국에서 다른 사람들과 그다지 말은 많이 안 했구나 싶은 수준이라 이애라는 애국자의 영어 실력에 심히 실망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애국자는 이애라에게 외국인들에게 할 말 없느냐고 물었다.
이애라는 애국자보다는 조금 유창하게, 외부에 행사를 홍보할 일이 있다면 함께 협력하자고 말했다. 외국인들은 굉장히 기뻐했고, 이애라가 만든 자료를 영어로 준다면 확인해 보겠다 했다.
은근 뭔가 회사에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이애라는 뿌듯함을 느끼며,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는데
"이애라 씨, 나 좀 봅시다"
애국자는 쌀쌀맞게 이애라를 불러 세웠다.
회의실에 들어간 애국자는 말했다.
"이애라 씨, 애라 씨는 어떻게 외국 사람들에게 먼저 홍보를 할 거냐며 물어볼 수 있어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보겠어요. 이애라 씨는 애국심도 없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애라는 당황했다. 지금 애국심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애라가 무슨 반역을 했단 말인가?
이애라는 큰 숨을 들여 쉬고 화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요즘 한국사람들 무시하는 외국 사람들 별로 없어요. 미국에 너무 오래전에 다녀오셔서 그런 시류에 대해서 느끼시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어요.
이제 한국을 후진국으로 생각하는 외국인은 없어요"
한국의 위상을 걱정하던 애국자는 그 후로도 굉장히 영양가가 없는 이야기를 했으나, 이애라의 귀에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이애라는 처음으로 애국심이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국기를 보면 마음이 울컥하고, 외국인들이 무시할까 봐 먼저 아무것도 제안하면 안 되는 것. 이런 것이 애국심일까?
아니다. 사람들에게 측은지심을 갖고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런 것이 애국심의 바탕이 되지 않을까.
존중이 핵심인 애국심은 세계시민으로 나아가는 원동력 아닐까?
케데헌이 빅 히트를 친 요즘. 그에게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궁금하긴 하나, 애국자를 다시는 만나가고 싶지 않으니 결론이 생뚱맞다.
#애국자 #케데헌 #이애라 #오피스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