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마케팅 자동화 툴 운영기: 첫 1년 간의 소회

마케팅 자동화, 처음부터 다시 세팅하다

by 조잘조잘 웽

유니콘 같은 존재, 마케팅 자동화 툴 (Marketing Automation)


사실 나는 마케팅자동화툴을 기획, 운영하는 업무로 채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계획은 언제나 틀어지는 것처럼, 이직 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각종 크고 작은 행사를 메인으로 담당하게 됐다. 1년 하고도 몇 달이 지난 후 드디어 본연(?)의 업무라던 마케팅 자동화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당시 마케팅 자동화에 대한 개념은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툴은 전혀 몰랐다. 나는 B2B마케팅을 10년 가까이했지만 대부분 돈 없는 마케팅을 해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마케팅 자동화 툴이란 마케팅이 많이 성숙된, 혹은 마케팅이 당당하게 자리 잡은 회사에서나 쓸 수 있는 유니콘 같은 존재였다. 드디어 그 유니콘 같던 마케팅 자동화툴을 써보고 거기다 내가 메인이라니(당시엔 이 업무의 메인이 뭘 뜻하는 지도 잘 몰랐다)! 꽤나 설렜다.


이전부터 운영을 해왔던 y님과 함께 매주 미팅부터 시작했다.



이미 잘 돌아가고 있던 걸 왜 처음부터 갈아엎었나

마케팅 자동화 툴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고민했던 건 기능이 아니었다. "이 툴을 왜 쓰는가?"였다.

앞서 이야기 헀듯 다들 여러 업무들로 바빴기 때문에 누군가가 마케팅 자동화 툴을 제대로 담당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수많은 기능을 자랑하는 마케팅 자동화 툴은 이메일 발송 도구 정도 수준이었고, 정작 ‘자동화’나 ‘고객 데이터 기반 리드 육성’ 같은 본래 목적은 고려되기 어려운 상태였다.


지금 정도의 활용 수준이라면 이 정도까지 시스템은 필요 없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마케팅팀이 하나의 단단한 조직이 되고, 퍼포먼스를 내려면 마케팅 체계 확립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마케팅 자동화도 만들어 가야 할 일이다. 그래서 본질부터 정리하자고 했다. ‘마케팅 자동화’가 뭔지,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마케팅 자동화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번 얘기를 나누면서 우선의 방향을 정했다.


'우리에게 맞는 고객을 잘 유입시키고 그 고객이 실제로 문의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걸 이 툴로 해내 보자는 게 결론이었다.


그 목표가 정리되니까 자연스럽게 지금 상태로는 안 된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이 목표를 중심으로 기존 시스템과 데이터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기로 결정했다. 툴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단순히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 방식을 새롭게 설계하고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바꿔 나가기: DB클렌징부터 대시보드까지


바꿔 나가기 1: DB 클렌징 기준 세우기와 클렌징하기

가장 먼저 본 것이 DB다. 우리가 보유한 DB가 얼마나 괜찮은가를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살펴보니 DB를 재정비해야 할 다양한 사유가 있었다.

이직 등 다양한 사유로 메일 주소가 없어졌거나 우리 회사의 메일을 차단한 경우

활용할 수 있는 고객 정보가 부족한 경우

우리 회사와 관련된 그 어떤 행동 정보도 없는 경우 등

이런 사유들을 다 모아서 어떤 DB를 거르고, 어떤 DB를 남길지 고민했다. 사실 하드바운스나 소프트바운스인 경우 미련 없이 삭제할 수 있었지만 고객 행동과 관련된 부분은 결정이 참 어려웠다. 협의와 협의 끝에 이메일 등 필수 정보가 부족하고, 아무 행동 정보도 없는(스코어링이 0에 가까운) DB는 삭제하기로 했다.


바꿔 나가기 2: 스코어링(Scoring) 재설계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니 스코어링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 없는 DB를 걸러내니 유효한 MQL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그간 마케팅팀에서 기껏 육성해 놓은 MQL을 영업팀에 넘기면 구매 의사가 없다는 경우가 응답이 돌아왔었다. 그렇다면 MQL의 기준이 모호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울론 MQL에 대해 마케팅과 세일즈 간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그래도 MQL이 SAL로 넘어갈 확률을 조금 더 키우고,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객 점수 부여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다.

홈페이지 n회 접속 → 특정 기간 내 특정 페이지 n회 접속

이메일 오픈 → 특정 url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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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회원 고객 문의 페이지 접속 점수 차등 부여

이런 식으로 구체화 후 운영하다 보니 아무런 상호 작용이 없는 사람(Unknown)이 갑작스레 고객 문의(SAL)로 넘어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래서 MQL과 SAL의 점수 차이가 크지 않던 부여 방식에서 SAL 점수를 아주 높은 숫자로 상향하고 Unknown → SAL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스코어링 예외 설계도 했다.

Scoring 기준 표 일부


바꿔 나가기 3: 캠페인, 자산 명칭 작성 방식 통일

목표도, DB클렌징도, 스코어링도 다 바꿔놓다 보니 한 분기가 흘렀다. 그래서 y님과 ‘자, 우리가 운영한 결과를 살펴보자!’며 호기롭게 통계를 내려고 하다 보니 이게 웬걸, 통계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 과거에는 이 툴을 쓰는 사람이 한정적이라 규칙이 없어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점차 툴 사용 인원이 늘어나면서 팀원 여러 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캠페인과 이메일, 랜딩 페이지의 명칭을 쓰게 되니 통계를 낼 수 없었다. 각자 무슨 목적으로 캠페인을 운영하는지 알 수 없으니 리드젠(Lead Generation)인지 리드 너처(Lead Nuture)인지 분류할 방법도, 기준도 없어 통계 내기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y님과 함께 이 기준을 바로잡고 가자고 했다. 우리 팀이 쓰는 마케팅 자동화 툴은 분류가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어서 어디까지 네이밍 규칙을 정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구조로 캠페인을 생성해야 하는지도 정말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래서 구조를 통일하고 명칭은 약자를 쓰기로 했다. 구조는 단계를 나눴다.

구조: 1단계 마케팅 육성 단계(목표) > 2단계 마케팅 대상 서비스 + 채널 > 3단계 자원 (이메일, 랜딩 등)

약자(예시)

- 육성 단계: LG (Lead Generation) / LN(Lead Nurture)

- 채널: PRM(프로모션) / IM(인바운드 유도) / OFFEVNT(오프라인 이벤트)

- 자원: EM(EDM) / FR(리드 수집폼)


문제는 이걸 만든 우리조차도 규칙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 네이밍 자동 생성기를 만들었다. 아래 내용을 입력하면 기준에 맞춰 입력할 네이밍이 나오게끔 세팅했다.

네이밍 자동 생성기


바꿔 나가기 4: Success 지표 / 산업군 분류 등


Success 지표

이런 세팅을 하면서 툴을 뜯어보다 보니 Success라는 지표가 있었다. 이 지표는 ‘실제 우리가 목표한 바에 도달했느냐’하는 지표였다. 그동안은 이 지표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가 개별 마케팅 캠페인의 성공 지표를 쉽게 볼 수 있다면 성과 분석이 더 편리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Success의 지표도 검토했다.


이 지표를 보려면 모든 마케팅 캠페인의 진행 단계를 검토해야 하고, 사전에 일괄적으로 확정되어 있는 지표라기보다는 개별 캠페인 별로 세팅이 필요하다. 다행히 진행 단계는 세팅이 되어 있었고, Success 예시를 만들어 팀원들에게도 Success 측정을 위한 세팅을 요청했다.


산업군 분류

앞선 DB, 스코어링 등을 바꿔나가면서 우리 회사가 가고자 하는 산업군에 따른 점수 부여나 유입이 많은 산업군이 정확히 어딘지에 대한 필요성이 생겼다. 기존에도 산업군 분류가 되어 있었지만 이 산업군 분류가 우리가 주로 타깃 하는 산업과는 약간의 괴리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고객 분류도 다시 한번 손대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산업군 분류부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우리 사업에 맞게끔 산업군 분류를 다시 했다. 큰 의미가 없는 산업군은 통합하거나 폐기했다. 우리는 산업군 분류 기준을 기업의 업태/업종으로 했는데 너무 많은 기업들이 한 업종에 몰려 있었다. 다른 플랫폼을 살펴보니 사업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팅은 이미 다했지만 결국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다.ㅠㅠ


바꿔 나가기 5: 대시보드 만들기

이렇게 많은 부분들을 정리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가시성이 떨어진다. 데이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세팅을 다 해놓고 보니 결과가 안 보인다.

쓰고 있는 마케팅 자동화 툴에서 제공하는 대시보드가 있지만 유연하지 못해 우리가 보고 싶은 데이터를 볼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정말 많이 고민했다. 과연 마케팅 자동화 툴을 수작업으로 대시보드화 하는 것이 맞는가부터 대시보드를 만들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까지. 글로벌 툴답게 add-on 기능 추가는 너무 비쌌고, 우리 예산은 넉넉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시보드를 만든 이유는 우리가 진행하는 마케팅 상황을 명확히 확인하고 지표를 내외부로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야 잘한 점이 뭔지, 문제 점이 뭔지 쉽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매번 리포트를 별도로 만들어 내는 것도 번거롭고 말이다.


일단 외부 리포트 툴을 활용해 대시보드를 별도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용하는 마케팅 자동화 툴에 있는 데이터만 끌어서 쓰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마케팅 전체의 대시보드를 만들게 됐다.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반자동 대시보드이긴 하지만 그래도 쉽게 통계와 인사이트를 볼 수 있는 것 자체에 의의를 가진다.



결국은 ‘왜 이 툴을 쓰느냐’가 우선

마케팅 자동화 툴을 세팅하고 운영했던 경험을 돌아보면 결국 핵심은 시스템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왜 이 툴을 쓰느냐를 먼저 정하는 거였다.

툴은 어디까지나 툴일 뿐이다. 우리 팀이 목표로 하는 게 무엇인지, 그걸 위해 어떤 기준과 프로세스가 필요한 지부터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MQL, SAL 기준을 그냥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 팀 기준을 만들어야 했고, 이 기준이 영업팀하고도 합의돼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시스템 운영이 아니라 팀의 마케팅 문화와 프로세스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처음엔 시스템 세팅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팀 전체가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기준으로 일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 큰 일이었다.


아직 마케팅 성숙도가 높지 않다면 굳이 너무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복잡한 툴을 쓸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이번에 느꼈다. 복잡하면 결국 안 쓰게 된다. 그래서 가볍게 시작하고 필요할 때 고도화하는 게 훨씬 현실적인 듯싶다.


다시 시작해도 같은 순서로 할 것 같다. 목표부터 정하고, 기본부터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 그게 결국 답이지 않을까.


이 모든 고민을 함께해 준 y님께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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