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밥 짓기 Oct 26. 2024

지문이 닳도록 자판을 두드리리라

어려운 시기였다. 남편이 하던 일은 망했고, 시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식구들끼리 나눠도 우리 집에 할당된 병원비는 감당하기에 벅찼다. 일을 찾아나서야 했다.

나는 글쟁이가 될 수 없나보다. 손가락에 박힌 펜혹을 바라보며 절필을 다짐했다. 그동안 썼던 글은 몇 해 동안 최종심까지가 한계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써두었던 글을 긁어모아 우체국으로 갔다.

그렇게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몇 편 습작하지도 않은 동화에서 한국일보 신춘이 당선되어 시인과 동화작가라는 자격증을 받았다. 소설 장르에서 최종심 두 군데도 이름을 올렸다. 그래, 앞으로 글을 써서 밥상을 차려야지. 지문이 닳아 없어지도록 자판을 두드리리라.

16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열병처럼 앓았던 시를 쓰지 않는다. 피멍 든 내 삶의 이야기는 시집 한 권으로 충분했다. 주변 사람들은 통역이 필요한 시를 추구했다. 중앙지와 지방지를 따지는 시인들의 가치관도, 다른 장르의 특성을 알지 못하고 오직 시가 최고의 문학예술 장르라 여기는 목이 빳빳하고 입이 거친 몇몇 시인들이 싫어진 이유도 있었다.

장르를 바꿨다. 시가 돈이 되지 않아서 변절했다는 소문이 자주 들려왔다. 일일이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동문학이라고 어디 돈이 되었던가!

컴퓨터 파일에는 일을 시작한 방과후 아이들의 교재가 더 많이 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글을 읽어주기 위해 밤을 새워 수많은 글을 필사했다.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것이 문학의 역할이요 글의 가치라 여겼다.

하지만 도서관에 갈 때마다 갈등했다. 저렇게 책이 많은데 나는 왜 쓰레기를 보태려고 발버둥을 치는가! 작가에게 저작료 한 푼 주지 않고 책을 무료로 빌려주는 도서관에 불만도 생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규정한 아동문학 작가의 원고료 지급 기준 단가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작가에게 지원하는 출판지원금은 한 푼도 남김없이 오롯이 출판사에 돌아간다.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면 전업 작가는 이슬만 먹고 살아야 할 판이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절망한다. 문학은 먹는 게 아니었구나, 다른 직업을 가지고 취미로만 하든지, 명함의 프로필용으로 하는 거구나. 직장인처럼 하루 8시간 글자가 닳도록 자판을 두드린다고 창작이 되는 게 아니었다. 글로 밥상을 차려보리라 다짐했던 꿈은 깨어나 해몽을 끝낸 지 오래다.

여전히 나는 삶과 문학 사이를 오가며 절필을 부르짖는다.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글감을 찾으러 도서관에 간다. 가슴에 맺힌 뜨거운 무언가를 아직 다 풀어내지 못했음이리라. 아니 언제 제대로 된 글 한 편 쓴 적 있었던가! 포기하려 마음먹었을 때 하늘이 주었던 동아줄이 한 번 더 내려오길 기대하며, 아직도 글을 쓰는 까닭이다.

이전 17화 주어진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